암세포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세포는 심각한 손상이 있거나 생물학적 항상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스스로 사멸하는 세포 자살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다.
이것을 '프로그램된 세포사멸(programmed cell death)'이라 한다. 세포사멸에는 다양한 종류의 경로가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생체에 강한 염증 및 면역 반응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를 적절히 이용하면 특정 세포에 대한 면역 반응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어 항암 면역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된 세포사멸 경로 중, 가장 강한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형태는 파이롭토시스(pyroptosis)인데, 이 파이롭토시스는 일반적으로 병원체나 병원체 연관 분자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UNIST 화학과 권태혁·민두영 교수팀은 물분해로 생성된 활성산소를 이용해 암세포를 죽이는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활성산소를 생성하는 광감각제가 암세포 내부의 막 단백질을 산화시켜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방법이다.
▲ UNIST 화학과 민두영 교수님 외 연구진들 (사진_UNIST 제공)
연구팀은 암세포의 막이 산화될 때 파이롭토시스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파이롭토시스는 면역 관련 인자들이 세포 밖으로 방출되어 강한 면역 신호를 보내 암세포의 효과적인 사멸을 유도한다. 일반적인 세포 사멸 방식인 아폽토시스(Apoptosis)와는 다르다.
민두영 교수는 막 단백질의 산화가 단백질 손상을 유발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포 내 광감각제가 빛을 받으면, 세포 내 막 단백질들이 활성산소에 의해 산화되어 손상된다. 이로 인해 세포 안에서 이를 치료하려는 소포체에 과부하가 걸려 결국 파이롭토시스가 발생하는 원리다.
이번 연구에서는 전자 주개-받개 형태의 광감각제가 저산소 환경에서 강력한 활성산소종인 하이드록실 라디칼(Hydroxyl radical)을 생성하는 방법을 밝혀냈다. 광감각형 항암제는 약물의 내성을 극복하는 동시에 면역을 활성화하여 파이롭토시스가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것이다.
▲ 세포 내막계 산화에 의한 파이롭토시스 유도 도식(UNIST 제공)
권태혁 교수는 "이 연구는 저산소 환경을 극복해 종양을 제거하고, 암세포에 대한 면역 반응을 강화해 재발과 전이를 방지하는 데 중요하다"라며 "면역 활성 세포사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선택적으로 유발할 수 있어 학술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암 치료에도 적용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UNIST 기술창업기업 ㈜오투메디는 이 연구를 기반으로 췌장암 동물실험 모델에서 효과적으로 종양을 제거하는 결과를 검증하는 등 전임상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5월 13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으며, ㈜오투메디, 한국연구재단, TIPS, 국립암센터, 울산과학기술원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