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북스] 정신병을 팝니다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는가


‘우울증’ ‘ADHD’ 같은 정신질환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사회 문제가 되었다.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는 사람은 한 해에만 100만 명에 달하며, ‘공부 잘하는 약’으로 통하는 ADHD 치료제는 지난 5년간 처방 건수가 3배 이상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각종 약물 처방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 수는 갈수록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왜 우리의 정신 건강은 나아지고 않고 오히려 악화하고 있는 것일까?

영국 의료인류학자 제임스 데이비스는 『정신병을 팝니다』에서 ‘고통을 이해하는 문화’에 일어난 거대한 변동이 정신 건강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정신질환이 약물로 치료해야 하는 한 개인의 뇌의 문제로만 비춰질 때, 정신적 고통을 둘러싼 맥락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는 실업, 경쟁적 교육, 물질주의 세계관 등이 고통의 사회적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개인화하고 의료화하고 상품화하는 사회 속에서 정신질환 환자 수는 늘어나지만 고통을 경유한 정치적 연대의 가능성은 오히려 축소되고 마는 것이다.

저자는 임상 상담의 현장을 찾아가고 통계 분석을 제시할 뿐 아니라 정치인, 정신의학자, 인류학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자유주의 사회와 정신질환의 관계를 하나하나 파헤쳐간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이 어떻게 정신질환으로 정의되어 왔는지, 그리고 정신질환에 대한 개인주의적 관점이 정부와 거대 기업에 의해 어떻게 장려되어 왔는지, 어째서 이것이 부적절하며 위험한지 보여준다. 

나아가 우리가 고통을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켜온 신자유주의 사회와 치료적 세계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왜 우리의 정신 건강은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는가?

지난 수십 년간 정신질환의 범위는 공격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질병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감정이 질병으로 이해되는 과정인 ‘의료화’ 또한 급속히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정신적 고통 대다수가 부당하게 의료화되고, 병리화되며, 투약의 대상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학교에서의 집중력 부족, 일터에서의 실적 부진 등은 최근 정신질환의 증상이라고 의학적으로 재분류된 수많은 고통 중 일부에 불과하다.

저자가 2장 <빚과 약물을 확산하는 새로운 문화>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울증’은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질병이자, 별다른 치료 없이도 자연적으로 해소 호전되는 질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특히 SSRIs 계열 항우울제가 개발되면서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질병, 즉 개인의 내부에 위치한 생물학적 질병이자 그렇기에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이해 방식의 확산과 함께 치료를 요하는 ‘우울증 환자’의 범위 또한 빠르게 확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처럼 심리학에 관한 담론이 활발해지고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 또한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 환자의 수는 지속해서 증가해왔다. 

일차적으로 이는 별다른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정신질환의 범주를 공격적으로 확대해온 제약업계와 정신의학계의 이익 추구 행위와 관련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또한 개인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개인주의적이고 시장화된 해법을 옹호함으로써 개인의 생산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주장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자신이 상담사로 일했을 당시의 경험들과 여타 임상 현장의 사례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과학적 연구와 통계자료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정신적 고통을 철저하게 개인의 뇌 문제로 구성하는 정신의학적 관점의 비과학성과 해악을 폭로한다. 

나아가 이러한 치료적 시각이 실제적 효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 사회적 지지를 받게 된 사회문화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를 탐색한다.

고통을 치료 대상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사회를 넘어서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개인 또한 하나의 상품이 된다는 것으로, 개인들은 진정한 자아의 실현이라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현대의 경제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이미지를 계발할 것을 요구받는다. 

치료적 세계관은 정신적 고통을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 뇌의 세로토닌 문제로 개념화한다. 그러나 우울증이 정상적인 질병이고 누구나 겪는 질병이라면, 현대 사회에 고통이 만연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질문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고통받는 상태가 정상이라며 얄팍한 위안을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더 적게 고통받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정신의학이 내세우는 세계관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깊이 손상시키며, 가장 탈정치화되고 소외된 우울증에 대한 이해의 방식을 제공한다.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공동체’는 인간이 홀로 다룰 수 없는 고통을 다루기 위해 발명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자 진통제이며, 반대로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관계와 공동체의 성립 조건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롭고 우울하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 것은, 함께 고통에 대해 사유하고 변화를 위해 연대하는 것이 의미 있는 관계와 삶을 구축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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