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보잘것없는 단일세포에서 시작해 수조 개의 세포로 이뤄진 유기체로 성장했다. 하나의 세포를 이토록 아름답고 복잡한 생명체로 변모하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인가?
자연의 가장 경이롭고도 보편적인 현상, 즉 ‘발생’은 과학이 수 세기 동안 찾고자 했던 가장 근원적인 질문 중 하나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낸다면 인류는 분명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미래를 열어젖힐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암 연구자이자 세포 및 발생생물학자인 벤 스탠거(Ben Stanger)의 첫 대중서 『하나의 세포로부터(From One Cell)』는 배아세포와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과학적 탐구의 여정뿐 아니라, 질병 해방과 재생을 향한 현대 의학의 위대한 모험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배아발생부터 유전자, 줄기세포, mRNA 등 생명의 기원을 추적해 나선 실험실 속 영웅들의 장대한 발견의 역사로 우리를 이끌며, 나아가 유전자 편집과 세포 역분화, 재생의학 등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현대 의학의 첨예한 이슈를 추리소설처럼 정교하고도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기적의 산물임을 깨닫게 된다면 당신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적혈구나 근육세포가 블루칼라 노동자라면, 뉴런과 호르몬은 관리 계층
제목의 ‘하나의 세포’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두 가지 유형의 세포, 즉 접합체(난자와 정자의 수정의 산물)와 배아줄기세포를 가리킨다. 이 책은 배아가 분화하여 서로 협력하며 형태와 움직임을 만들고 거대한 생명체로 성장하는 ‘배아발생’의 과정을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처럼 추적해나간다.
저자에 따르면 발생의 여정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위험으로 가득 찬 항해’다.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수십억 개의 DNA 문자를 읽고 복사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세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분자처리 과정은 정확도가 99.9%를 넘을 정도로 정밀하다.
놀라운 것은 인간이나 생쥐 같은 포유류에서 초파리, 선충, 성게, 나아가 바이러스와 세균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하나의 세포에서 생명을 시작하는 발생 과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발생은 약 46억 년 동안 생명체를 생성하고 지켜온 지구가 최종적으로 확보한 진화의 메커니즘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속에서 세포는 어떻게 ‘알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가? 발생이 그토록 정교한 작업이라면 왜 질병과 암이 발생하는가?
저자는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과학서에서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는 질문과 일상적이고 친근한 비유로써 설명을 이어간다. 우리 신체는 모든 세포가 사회적 질서 안에서 부여받은 역할과 위치에 따라 움직이는 유토피아적인 집합체로 비유된다.
적혈구나 근육세포, 각질형성세포 등 반복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세포들이 ‘블루칼라 노동자’라면, 호르몬으로 세포의 활동을 동기화하는 내분비세포나 두뇌의 뉴런은 지시를 내리는 관리계층에 속한다. 이들 세포들은 모두 동일한 유전자를 언어로 삼아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세포 집단에도 악당이 있었으니 대표적으로 암세포가 그러하다.
종양을 ‘암세포의 집합체’로 이해하는 통념과 달리, 암에 대한 현대적 이해에서 암세포는 배아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가진다고 본다. 정상 세포라 할지라도 잘못된 시간과 장소에 놓이면 ‘폭주하는 세포’가 되어 암으로 진화하며, 그렇기에 하늘아래 동일한 암이 존재할 수도 없다.
대중의 생물학적 문해력을 위한 시도와 기초과학 연구의 필요성 대두
생명과학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윤리적 문제다. 2018년 태아의 유전자를 편집한 최초의 과학자인 허젠쿠이(贺建奎) 박사는 결국 구속되어 감옥에 갇혔고, 2021년에는 캘리포니아 라호야에서 원숭이와 인간의 키메라 배아(서로 다른 두 종의 세포가 결합된 배아)가 만들어지며 논란이 되었다.
저자 역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하버드 줄기세포 과학자 더글러스 멜튼의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자신들의 연구가 정치적·윤리적 반발에 부딪히는 과정을 일선에서 경험했다. 지금까지도 인간 배아 연구에 관한 국제 표준은 수정 후 2주 이상 지난 배아의 배양을 금지하고 있으나, 복제인간, 유전자 편집으로 생산된 자녀, 영원히 죽지 않는 인간 등 SF에서 묘사하는 인류의 미래가 걷잡을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리라는 것은 어려운 상상이 아니다.
과학적 탐구의 ‘스릴’에 집중했던 초기 발생학 연구와 달리 오늘날의 과학 연구는 대규모 연구 집단이 의학적, 상업적 잠재력을 중시하는 응용과학 연구, 즉 ‘빅 사이언스’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 저자는 “후생유전학적 조절과 유전자 편집에 관한 발견은 실무자조차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380쪽)되고 있는 만큼, 우리 사회가 새로운 지식을 소화하고 실생활에 반영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인간이 발견한 이 기술을 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려면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며, 이에 생물학적 문해력(biological literacy)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바로 대중의 생물학적 문해력 향상을 위한 저자의 야심찬 시도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지난 1세기 동안 생명과학 분야의 놀라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생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기관의 모양과 크기를 제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명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밤의 과학’에 머물러 있다.
저자는 본질적인 지식은 결과가 예측 가능한 프로젝트인 ‘낮의 과학’이 아니라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구불구불한 ‘밤의 과학’을 헤매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밤의 과학을 헤매며 오늘도 ‘무지와 이해의 경계, 지도가 그려지지 않은 곳을 탐색’하는 과학자들처럼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과학적 탐구의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