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플롯이 복잡한 영화나 난해한 언어로 쓰인 시를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 수많은 사람을 구분해 관계 맺고 소통할 수 있을까? 어떻게 시간의 흐름을 따라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이러한 활동들은 얼핏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일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길 찾기 능력’과 관계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우리가 수행하는 각각의 일을 관장하는 각각의 뇌 영역을 찾고자 애써왔다. 가령 인지 능력이 궁금하면 전두엽에 전극을 꽂거나, 욕망의 원리가 궁금하면 스캐너로 변연계의 신경영상을 촬영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뇌의 거의 모든 영역이 활성화되는 순간을 발견했으니, 바로 우리가 길을 찾을 때다.
이 놀라운 발견은 인간을 정의하는 각종 지적 활동이 모두 길 찾기 능력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집 안에서 화장실을 찾아 갈 때 그의 뇌는 복잡한 수학 난제를 푸는 것만큼이나 활성화된다.
물론 본인이 ‘길치’라고 해서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뇌는 쓰는 만큼 좋아진다. 저자는 뇌의 이곳저곳을 연구해온 여러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길 찾기 능력과 지능의 관계를 파헤치고는, 그 결과를 이 책에 담아냈다.
‘길 찾기 능력의 뇌과학’으로 불릴 만한 이 책은 평생 쉬지 않고 지도를 그려내는 뉴런들, 그것이 인류의 생존과 진화, 문화와 언어에 미친 영향,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으로 달라지는 현대인의 뇌 구조, 심지어 실종자의 뇌에 도사린 길 찾기 장애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저자가 특히 경계하는 것은 GPS 기술이다. 오늘날 GPS 기술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너무나 편하지만, 이는 우리 뇌의 길 찾기 능력을 약화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보고 길을 찾을수록, 우리의 뇌는 기능하지 않은 채 침묵하게 된다.
길 찾기 능력은 곧 지적 능력과 연결되므로, 이는 큰 문제다. 심지어 뇌의 물리적인 구조 자체가 바뀌기도 한다. 특히 장소세포가 많이 분포된 기억 중추인 해마가 쪼그라든다.
이러한 손상은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의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처방은 간단명료하다. 자신의 뇌를 사용해 길을 찾아는 것이다. 어쩌면 완전히 길을 잃었을 때야말로 가장 좋은 기회일지 모른다. 머릿속 인지지도를 따라 우선 한 발짝을 내디뎌보라. 이 작은 시도가 뇌의 지능을 높이고 통제권을 되찾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또한, 무엇이 우리를 “미래로 나아가게, 상상하거나 기억했던 공간으로 전진하게” 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저자의 안내를 따라 뇌라는 미로의 구석구석을 탐험해보자. 길 찾기 능력의 경이로움에서 답을 찾게 될 것이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