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육아생활] 한글 학습도 뇌 발달 과정에 맞춰서 해야 하는 이유

브레인 107호
2024년 11월 30일 (토)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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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학습과 뇌발달 (사진_게티이미지 코리아)


한글을 못 깨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말이 좀 늦게 틔었고, 워낙 느린 아이여서 한글도 다 깨치지 못하고 입학했어요. 한 학기가 지난 지금, 한글 공부방에 다니며 글자를 많이 익혀서 거리의 간판 글씨 중 단순한 것들은 읽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쓰기예요. ‘달’이라는 글자를 읽기는 하지만 쓰라고 하면 ‘다’를 쓰고 받침을 물어봅니다. 받침 있는 글자는 대부분 쓰지 못하는데, 가르쳐 주면 그때뿐이에요. ​아는 글자도 낯선 단어에 들어 있으면 못 읽고, 읽기가 안되니 문제도 풀 수가 없어요.

혹시 난독증일까요? 아이에게 한글 가르치면서 화냈던 게 무척 미안합니다. 단순히 한글 깨치는 게 늦는 건지,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지 걱정이에요. 아이도 답답한가 봐요. 교실에서 받아쓰기할 때 자기만 선생님에게 한 번 더 불러달라고 하면 친구들이 뭐라 한대요. 아이가 상처받을 것을 생각하니 그것도 속상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때에 부모에게 가장 큰 숙제 가운데 하나는 일찌감치 한글을 떼야 한다는 것이다. 입학 전에 한글 읽기와 쓰기를 익힌 아이들이 많기도 하고, 일선 교사들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한글 읽기와 쓰기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전제 아래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애써 가르치지 않더라도 아이 스스로 한글에 호기심을 갖고 읽기에 관심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쓰기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지만, 모든 아이가 부모의 기대에 맞춰 한글을 익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모의 걱정은 쉽게 불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의 조급증은 오히려 아이의 한글 학습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한글에 흥미를 느끼도록 차분하게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뇌에서 말하기를 담당하는 영역은 선천적으로 발달하는 반면, 글을 담당하는 영역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채근한다고 해서 학습이 빠르게 진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의 고유한 리듬에 맞춰 한글 학습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우선 한글 터득에 대한 부모의 강박을 버릴 필요가 있다. 한글 학습이 급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한글을 완벽하게 읽고 쓰는 것을 목표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대략 비슷하게 읽을 줄 안다거나, 긴 문장에서 한두 글자 모르는 정도는 허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맞춤법이 틀리더라도 엄마가 부르는 짧은 문장을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 학습,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아이가 한글에 흥미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익히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➊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림책을 자주 접하게 하고, 동화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물에 대한 인지력을 키워주는 것이 곧 한글을 빨리 익히게 하는 동기부여로 작용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부모가 한글을 익히며 아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에 적극적인 개입을 주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대부분 인정욕구와 함께 동조효과를 경험하기 때문에 글자를 줄줄 읽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자신도 한글을 유창하게 사용하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아이의 스트레스를 우려해 한글 학습 시기를 늦추거나, 지나치게 천천히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의 자존감에 해가 될 수도 있어요.

➋ 이론적인 접근을 피합니다

자음과 모음의 소리, 조합 원리, 둘을 결합해 만들 수 있는 말 등과 같이 너무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글에 대한 아이의 흥미를 오히려 감소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아이에게 친숙한 단어나 간단한 문장을 활용해 알려주세요. 

받아쓰기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있으니 반드시 과제를 다 익히게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다그치는 것은 매우 곤란한 방식입니다. 호기심으로 놀이처럼 접근했던 한글 학습이 지겨운 공부로 여겨지는 순간 학습효과는 반감됩니다. 

또한 집에서 매일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틀린 맞춤법을 일일이 지적하는 것은 아이의 자신감을 떨어뜨릴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엄마와의 정서적 교감의 질도 떨어지게 됩니다. 그림책이나 학습지뿐 아니라 광고 전단, 간판 등 다양한 교구와 교재를 통해 아이가 재미를 느끼도록 실용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➌ 그림과 글자를 대응시킵니다

우리 뇌는 글자를 시각 자극과 소리를 연합하는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크게 보면 세 가지 요인이 서로 연결되어야 글자학습이 가능한데, 시각적인 대상이 되는 사물과 글자, 그리고 소리가 결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림을 활용해 글자와 연합시키고, 동시에 소리내어 읽게 하는 반복훈련이 한글 학습에 큰 도움이 됩니다. 받침이 없는 비교적 쉬운 단어부터 시작해서 받침 있는 단어로 천천히 아이의 학습 속도에 맞춰 진행합니다. 

➍ 맞춤법보다는 이해가 중요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한글 학습에서 대개는 맞춤법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글자에 대한 학습은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맞춤법은 그다음에 바로잡아도 됩니다. 글은 소리를 시각적인 기호로 옮겨적는 수단이기 때문에 학습 초기 단계에 아이들이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신비 아파트를 일거서 오늘은 기분이 조아씁니다’라고 아이가 그림일기를 쓴 경우, 이는 나무랄 일이 아닌 것이지요. 관점을 바꿔보면, 아이의 표현은 ‘발음기호’라는 측면에서는 정답이니까요. 따라서 발음을 옮겨적는 것과 맞춤법에 따라 적는 것의 차이를 알려주고 맞춤법을 익히도록 하되,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을 틀렸다고 지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숟가락’ 같은 단어 받침에 왜 ‘ㄷ’이 들어가야 하는지 성인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듯, 한국어 받침 표기는 관습적인 암기의 영역이 많기 때문에 정확히 익히기까지 시간이 꽤 걸립니다.
 

▲ 사진_게티이미지 코리아
 

손 놀이를 통한 운필력 기르기  

“아이가 글씨 쓰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일기 쓰기 숙제를 해야 할 때면, 아이에게 이후에 동영상을 조금 더 볼 수 있게 해주겠다는 보상을 제시하는데 그럼에도 진도가 잘 안 나갑니다. 그래서 아이가 일기를 쓰는 동안 옆에 앉아서 연필을 놓지 못하게 지켜봅니다. 

지난번에는 아이가 마지막 문장을 쓰고 “끝났다“라고 외치길래 “기분이 어땠는지도 써야지”라고 했더니 당황한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려요. 글 쓰기를 무척 힘들어하는 우리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가 글쓰기를 힘들어할 때 부모는 흔히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또는 문장을 만들기 어려워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소근육 발달 문제로 글씨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워 그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말하기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지만 쓰기는 두정엽과 소뇌, 후두엽 등 다양한 뇌 영역이 움직여야 하는 복잡한 활동입니다. 그 결과 크레파스나 연필을 쥐기조차 싫어하는 아이, 숟가락이나 젓가락 다루는 게 서툰 아이, 가위질을 못 해 매번 실수하는 아이, 글씨를 또박또박 쓰기 어려워하는 아이 등 유난히 손으로 하는 활동이 서툰 아이들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으니 금방 싫증을 내거나 포기하죠. 그런 아이를 보는 부모의 한숨은 깊어지고, 손을 자주 사용해야 뇌 발달이 수월하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면 아이한테 정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이에게 색칠하기 워크북이나 가위질 연습을 시키는 방법은 오히려 아이의 소근육 발달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왜 손을 사용하는 것이 서툴고 하기 싫어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기, 쓰기, 가위질하기처럼 잘하지 않으면 티가 크게 나는 활동 대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손 놀이를 통해 운필력을 조금씩 길러주는 방법이 좋습니다. 손을 발달시킨다는 것은 단순히 연필 쥐는 힘을 기르거나 손가락을 세밀하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 기능의 발달은 신체의 여러 부위의 고른 발달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몸통, 어깨, 손목처럼 손과 연결된 부분의 근육이 안정되어야 손의 기능이 수월하게 발달하는 것이지요.

신체의 발달은 보통 중심부에서 시작해 끝부분으로 차례차례 진행됩니다. 몸의 중심부가 발달함에 따라 몸의 말단인 손가락도 발달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손으로 만지고 원하는 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눈와 손의 협응 능력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손가락 운동제어뿐 아니라 눈과 손의 협응 능력이나 대근육 발달이 안정되어 있는지도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다음에 다양한 촉각 감각과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입력되는 고유수용성 감각을 많이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손으로 여러 종류의 사물을 잡아보면서 몸의 감각을 느끼고, 어느 정도의 힘으로 연필을 쥐어야 글을 오래 써도 아프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를 익힐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손가락의 세밀한 움직임이 발달합니다. 


소근육-시지각 발달을 위한 놀이

➊ 테니스공 인형에 밥 주기

테니스 공, 검은콩, 커터칼, 유성 매직을 준비합니다. 보호자는 아이의 쥐는 힘에 맞게 테니스공에 칼집을 냅니다. 테니스공에 눈과 코를 그려 얼굴을 만들어주면 역할 놀이를 하듯이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가 테니스공을 힘껏 눌러 입을 벌리면 검은콩이나 작은 구슬을 입 안에 하나씩 집어넣습니다. 쥐는 힘이 강한 아이라면 칼집을 조금만 내어서 최대한 힘을 쓰게 해주고, 쥐는 힘이 약한 아이라면 칼집을 많이 내어 작은 힘으로도 입이 쉽게 벌어지도록 만들어 줍니다. 
 

➋ 마녀 손가락 놀이

10~15cm 길이의 마분지를 고깔 모양으로 말아서 아이 손가락에 끼웁니다. 다양한 색상의 종이라면 아이가 더 좋아하겠죠. 고무로 된 얌체공 여러 개를 바닥에 두고 고깔을 끼운 손으로 잡습니다. 공의 크기를 다양하게 하거나, 고무찰흙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면 더 좋습니다. 

정한 시간 안에 고무공을 많이 집어서 통에 넣는 게임을 해보세요. 고깔을 손가락에 끼워 물건을 잡으면, 손가락에 자연스럽게 힘을 주게 되어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➌ 연필 쥐는 법 연습하기

• 연필을 잡고 나머지 손가락을 반복해서 펼치는 경우 : 양말을 활용해 손 전체 모양을 잡고, 엄지와 검지 위치에 맞게 구멍을 내주세요. 자른 구멍으로 엄지와 검지만 나온 상태로 연필을 쥐게 합니다. 

• 손가락 힘이 부족해서 연필이 미끄러지는 경우 : 바르게 연필을 쥘 수 있지만 힘이 없어서 연필이 미끄러지는 경우에는 고무로 된 교정기를 구입해 연필에 끼워주거나, 고무줄로 연필을 감아서 손가락과의 마찰력을 올려주세요.


글_이슬기 수인재두뇌과학 수석소장. 《산만한 아이의 특별한 잠재력》, 《4~6세 느린 아이 강점 양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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