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까먹는 아이, 이렇게 도와주세요 (이미지 출처_Gettyimage Korea)
11살 수연이 부모님은 수연이의 공부뿐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자꾸 놀림을 받는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습니다. 침착하고 얌전한 이미지와 달리 수연이는 덤벙거리며 사소한 교칙을 위반하는 일이 잦아 학교 친구들이 ‘수연이는 원래 그런 아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버렸기 때문입니다.
실내화를 신은 채 운동장으로 나갔다가 교무실에 불려 가기도 하고, 7월부터는 하절기 체육복을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반에서 혼자 긴 바지 체육복을 입어 안절부절못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수연이를 보면서 부모님은 앞으로 남은 학교생활을 아이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 막막한 심정입니다.
게다가 공부를 늘 열심히 하고 숙제도 꼬박꼬박하는데 공부하는 양에 비해 결과가 초라하다 보니,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 것도 힘들 텐데 공부의 성과도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아 아이가 점점 주눅 드는 것 같아서 더 안쓰럽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공부하는 것에 비해 성과가 오르지 않는 이유
수업 태도에도 문제가 없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노력에 비해 학업 성과가 떨어지게 되면 학습에 의지를 가지고 있던 아이라도 좌절하거나 풀이 죽어 학습에 흥미를 잃곤 합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속상하기 그지없는 일인데, 왜 공부하는 만큼 성과가 나지 않을까요?
아이가 적극적으로 학습에 임하는데도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은 학습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학습 과정에서 두뇌의 종합적인 정보처리 속도가 보통 아이들보다 더뎌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실제로 이해하거나 습득한 정보의 양이 현저히 적은 것이죠.
아이의 학습능률은 ‘작업기억력(Working Memory)’과 관련이 깊습니다. 작업기억력이란 필요한 정보를 잠깐 기억해 두었다가 바로 이어지는 다른 작업을 할 때 활용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 앱으로 물건을 사고 결제를 하는 과정에 6자리 인증번호를 문자로 받죠. 이때 인증번호를 잠시 외워 쇼핑몰 화면에 입력할 때 작동하는 것이 작업기억력입니다. 말 그대로 특정한 작업(work)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기억력이죠. 이러한 작업기억력이 떨어지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연속적인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속도가 느려져 학습 효율이 크게 떨어집니다.
학습을 위해서는 기억력이 정말 중요한데, 일반적으로 ‘기억력이 좋다’고 할 때는 ‘장기기억력long-term memory’이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장기기억이 입력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전에 ‘단기기억력short-term memory’이 먼저 효과적으로 입력이 되어야 합니다.
단기기억이 반복되면서 점점 머릿속 뇌세포 사이의 연결이 강해지면 비로소 장기기억이 형성되는 것이 학습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기기억을 입력하기 위한 첫 단추가 다름 아닌 작업기억력이지요.
그런데 이 작업기억력은 비단 학습에만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정보를 입력하는 효율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능력이 작업기억력인데, 이에 문제가 있는 경우 방금 들은 말도 횡설수설하게 되고, 엉뚱한 내용들만 기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 친구들이 정한 놀이 규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또래들에게 ‘쟤는 만날 엉뚱한 이야기만 하고 바보 같아’라는 부정적 인식을 쌓아 사회적 활동에서 점차 배제되기도 합니다.
수연이의 사례처럼 작업기억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학교 과제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거나 엉뚱한 복장을 착용해 또래들로부터 놀림을 받기 쉽습니다. 이 때문에 관련 학자들은 ADHD의 핵심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작업기억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작업기억력을 올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학습능률을 올리는 작업기억력 훈련법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성취도가 좋지 못하다면 무작정 공부 시간을 늘리기보다는 작업기억력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아이의 작업기억력을 올리기 위해 가정 먼저 실천해야 하는 것은 양질의 수면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두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망이 강화되어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고, 상황에 따라 꺼내 활용할 수 있는 종합적인 기억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함께하는 놀이를 통해서도 아이의 작업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말 따라 하기’입니다. 부모가 한 말을 순서대로 따라 하게 하는 놀이로 아이의 작업기억력뿐 아니라 청지각 능력과 어휘력을 키우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긴 문장으로 시작하기보다는 3~4개의 단어로 된 짧은 문장으로 해보다가 아이가 잘 따라 하면 단계적으로 문장 길이를 늘이는 것이 좋습니다.
말 따라 하기를 무리 없이 수행한다면, 다소 복잡한 심부름을 시켜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들은 대개 부모님과 마트 가기를 즐겨하는데, 마트는 그 자체로 풍부한 인지 기능 테스트 공간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사야 할 물건 목록을 잘 기억했다가 하나씩 찾는 놀이형식의 장보기를 통해 작업기억력과 언어 범주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의 두뇌는 발달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이처럼 간단한 생활 습관 교정과 놀이를 통해서도 작업기억력을 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이의 학업 성취도가 낮다고 해서 머리가 나쁘다고 단정 짓거나, 무리하게 공부 시간을 늘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보다는 학습능률을 높일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임을 기억해 주세요.
글_이슬기 수인재두뇌과학 수석소장
《산만한 아이의 특별한 잠재력》, 《4~6세 느린 아이 강점 양육》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