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양궁 팀이 단체전 10연패의 쾌거를 이루었다. 88 서울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따고 내리 우승만 한 것이다. 이어서 남자 대표 팀까지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3연패를 이룬다. 이로써 한국 양궁은 ‘남녀동반 세계최강'의 새로운 신화를 썼다.
끝까지 우리를 추격하던 중국대표팀의 사령탑은 한국인 권용학 감독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인도, 부탄, 베트남, 이란, 말레이시아, 개최국 프랑스의 감독도 한국인이다. 더 많은 한국인 양궁감독들이 각국의 양궁선수들을 가르치며 태권도나 유럽축구감독들처럼 세계스포츠 계를 이끌어 갈 것이다.
예로부터 동양 삼국에서 일본은 칼, 중국은 창, 조선은 활이 대표적인 근접무기였다. 한반도와 만주의 부여, 고구려, 백제 등 예맥민족들은 기마민족이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말을 타고 내달리며 활을 쏘아 사냥과 전쟁을 하였다.
가장 오래된 활의 유적은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져 있다. 길림성 집안현 무용총의 수렵도에는 고구려 무사가 말을 달리며 호랑이, 사슴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들은 ‘직사’ 뿐 아니라 몸을 돌려 뒤를 향해 쏘는 ‘배사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고 있다. 유럽을 휩쓴 아틸다의 훈족 또한 ‘파르티아 기사법(배사술)’을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서양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북방유목민의 활쏘기 기술로 아틸다는 아버지이며 훈족은 한민족의 갈레였다는 학설도 있다.
철저한 중화사상의 지나인들은 지금의 베트남 쪽을 남만, 산시성, 간쑤성 일대를 서융, 위구르, 몽골 등은 북적으로 지칭하니 모두 오랑캐란 뜻이다. 다만 수, 당 시대에도 동쪽만큼은 큰 활을 잘 다루는 동이(東夷)부족이라며 은근히 경계하고 있다. 고려 말 문신 이색(李穡 1328~1396)은 이를 뒷받침할 일화를 들려준다. 645년, 안시성 전투에서 양만춘의 화살에 눈을 맞은 당 태종 이세민의 모습이 암호처럼 서술되어 있다. ‘謂是囊中一物耳 那知玄花落白羽’
‘(당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를 자기 주머니속의 물건처럼 쉽게 취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더니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쏜) 흰 깃의 긴 화살에 맞은 검은 눈알이 꽃처럼 떨어져 버렸구나.’ 글자마다 고구려인들의 기개가 강렬하게 넘쳐나니 활에 대한 깊은 믿음이다.
과연 고구려의 시조 주몽(추모)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보통명사였다. 고조선계의 예맥족이자 스키타이 문화와 연관된 신라도 관료선발에는 승마와 활솜씨가 큰 영향을 끼쳤다.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싸울애비 역시 나라를 지키는 최고의 집단으로 이와 같은 전투기술을 몸으로 습득하였다.
1371년, 고려의 장군 이성계는 1만5천명의 병력으로 압록강을 건너 원나라의 우라산성(현 중국 지안현)을 공격한다. 이성계가 70발의 화살로 원나라 병사들의 얼굴을 모두 명중시키자 원나라 군대는 성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1380년, 황산대첩에는 왜군의 맹장이 있었다. 겨우 열 대여섯으로 골격과 용모가 단정하고 고우나 사납고 날래기가 비할 데가 없었다. 흰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면서 달려드니 그가 향하는 곳마다 고려군은 짚단이 갈라지듯 무너졌다.
주눅이 든 고려군은 그를 ‘아기발도(阿其拔都)’라 일컬으며 다투어 피하였다. ‘아기’는 어린애이고 ‘발도’는 몽골어의 전사이니 ‘어린전사’쯤 되는 존칭이었다. 그의 갑옷과 투구는 얼굴을 보호하는 ‘멘구’까지 장착된 탓에 조금도 틈이 없었다.
사령관 이성계의 화살 한 대가 날뛰는 아기발도 투구의 윗부분 정중앙에 명중한다. 충격으로 졸라맨 끈이 풀리면서 투구가 약간 벗겨졌다. 그 찰라 이성계의 부하이자 역시 명궁인 이지란(퉁두란)의 화살이 아기발도의 얼굴에 명중하였다.
이로써 전에 없이 강력했던 왜구의 잔당은 지리산 깊숙이 도주하다 전멸당하고 이후 한반도를 향한 침입의 규모나 빈도도 감소한다.
정윤겸(鄭允謙 1463~1536) 장군의 기록이다. 왜구가 쏜 활에 우리군사는 부상자 하나 나지 않은 반면 50명의 왜구는 갑옷을 입었음에도 우리의 화살을 맞고 즉사하였다.
신립은 니탕개의 난 때 적진으로 홀로 뛰어들어 활 하나로 전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중에도 강력한 관통력의 조선군 ‘애기살’에 대한 왜군의 공포는 조선군의 조총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컸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 가장 자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일과 중에 하나가 활쏘기였다. 1592년 3월 28일, 장군은 50발을 쏘아 43발을 명중시켰다. 1640년대의 군관 이시복은 200발을 쏘아 200발을 명중시켜 신궁이라 불리웠다.
조선후기의 성군인 정조대왕도 명궁이었다. 정조는 50발 중 49발을 명중시키고 ‘스스로 겸손하기 위해’ 한 발은 일부러 다른 곳을 쏘았다. 이처럼 활을 다루는 기술, 능력, 마음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우리가 압도적 우위였다.
활이 발전한 것이 총이 아니겠는가. 역대 최연소인 16세의 반효진 사격선수가 백 번째 금메달을 선사하였다. 과연 명사수 안중근의 후예답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사격의 김예지 선수를 향해 “그를 액션 영화에 캐스팅해야 한다.”고 재색을 극찬하였다. 펜싱의 오상욱 선수는 사브르 부문에서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대를 이은 우리의 젊은 궁사, 검객, 사격 인들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한국의 스포츠 선수들은 앞으로 배우나 가수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인기인이 될 것이다. 파리가 주최 한 k-올림픽에서 달타냥과 로빈훗이 울고 갈 일이다.
국보 제305호인 통영의 세병관(洗兵館)에는 지과문(止戈門)이 있다. 위풍당당한 전투민족의 선조들은 ‘병장기는 닦아 넣어두고, 창은 녹여 보습을 만들자.’ 고 오히려 끊임없이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평화를 목표로 하는 최종병기 전투민족!
이 얼마나 위대한 한민족 DNA의 정체성인가!
글. 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