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인 매리언 울프의 대표작 《Proust and the Squid》가 재출간됐다. 2009년 한국에서 ‘책 읽는 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이 책은 원제를 살려 《프루스트와 오징어》로 새롭게 이름을 달았다. 재출간을 맞아 한국어판 서문도 추가됐다.
매리언 울프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은 국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빠르게 디지털 문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읽기를 시도할 시간을 잃어버린 현실에 주목하고, 깊은 독서가 가져다줄 타인에 대한 공감, 비판적 사고와 추론, 사색이 좋은 사회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프루스트와 오징어》는 독서 관련 분야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은 역작이자 13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읽기 연구 분야의 고전으로, 전 세계 언론과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은 책이다.
독서의 지적 세계를 상징하는 ‘프루스트’와 독서의 신경학적 측면을 상징하는 ‘오징어’가 결합된 제목에 걸맞게, 《프루스트와 오징어》는 가장 과학적이면서도 가장 문학적인 방식으로 독서라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에 관해 논한다. 신경과학, 문학, 고고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자료와 생생한 사례들을 통해 매리언 울프는 독서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밝힌다.
《프루스트와 오징어》는 디지털 문화로의 전환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최근 10대를 비롯한 전 세대에서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경향이 크게 늘어나면서 디지털 중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영상 위주의 학습이 집중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이런 디지털 문화로의 급속한 전환은 매리언 울프가 이미 15년 전부터 《프루스트와 오징어》를 통해 경고해온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 책이 유효한 이유다.
뇌는 어떻게 독서를 배우는가?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다.” 《프루스트와 오징어》의 첫 문장이다. 매리언 울프의 이 단호한 선언은 읽기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뒤집으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흔히 읽기를 말하기, 잠들기와 같이 선천적으로 터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읽기란 후천적으로 익힐 수 있는 기술에 가깝다. 수십만 년에 이르는 현생인류의 기나긴 역사에서 독서가 시작된 시기는 불과 몇천 년 전에 불과하다.
《프루스트와 오징어》 1부에서는 인간이 처음 글을 읽게 된 역사부터 짚고 넘어간다. 수메르, 이집트 문명에서 인류 최초의 문자가 개발되고 고대 그리스에서 알파벳이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인류가 점차 문해력 위주의 사회에 가까워졌음을 통찰할 수 있다.
수메르인, 이집트인이 어떻게 읽기 능력을 획득했는지를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한 개체 안에서 읽기 능력이 발생하는 모습을 관찰해 간접적으로 그 방법을 짐작할 수 있다. 매리언 울프는 인간이 읽기 능력을 획득하게 된 이유가 뇌의 가소성에 있다고 밝힌다.
뇌 가소성이란 뇌가 스스로 신경회로를 바꾸는 특성을 뜻한다. 매리언 울프는 이 책에서 외부의 감각적 자극을 통해 뇌가 일종의 독서 회로를 구성하는 과정을 자세히 다룬다.
글을 읽을 때, 인간의 뇌에서 한 부분만 자극되는 것이 아니라 독서 회로로 연결된 부분들이 전체적으로 자극을 받게 된다. 이런 자극의 결과로 독서 회로가 형성되고 변화하면서 읽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매리언 울프는 독서를 지속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이 독서 회로가 확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책을 잘 읽던 사람도 독서를 지속하지 않으면 읽기 능력이 퇴화해 초심자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고, 글을 잘 읽지 못하던 사람도 꾸준히 책 읽는 노력을 하다 보면 문해력이 좋아질 수 있다. 읽기 능력이 사람마다, 시기마다 달라지는 이유다.
난독증의 원인은 무엇이며, 난독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매리언 울프가 이 책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난독증이다. 앞서 설명한 과정을 통해 인간이 글을 읽게 되었다면, 글을 읽지 못하게 된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만약 독서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면 난독증이란 어쩌면 당연한 증상이 아닐까? 토머스 에디슨,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창의적인 천재들에게서 난독증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는 뭘까? 세계적인 읽기 연구자이자 난독증에 걸린 아들의 어머니로서, 매리언 울프는 난독증에 관해 새롭고도 정확한 시선을 보여준다.
난독증이란 독서 회로 연결이 일반적이지 않아 읽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난독증 환자의 남다른 독서 회로는 때로 창조성이 극도로 발현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다빈치, 아인슈타인, 에디슨, 가우디 등 창조적 사고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문맹 사회라면 이런 이들이 불리할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읽고 쓰는 능력에 바탕을 둔 사회에서는 고통받게 된다. 더 문제인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난독증이 있다고 해서 지능이 낮은 것도 아니고, 모든 난독증 환자에게 놀라운 천재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부모나 교사가 이런 편견으로 필요한 치료나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들이 지닌 나름의 독특한 잠재력을 펼칠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만다.
매리언 울프는 난독증 연구를 ‘빠른 속도로 헤엄치지 못하는 새끼 오징어를 연구하는 것’에 비유한다. 난독증 연구를 통해 그 오징어가 헤엄을 잘 치기 위해 필요한 것과 다른 오징어처럼 헤엄치지 않아도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독특한 재능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난독증 연구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아이든 잠재력이 헛되이 낭비되지 않도록 해주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
마지막 장인 9장에서 울프는 디지털 매체가 주된 정보 공유의 수단이 된 시대에 등장할 ‘디지털 뇌’에 대해서 전망한다. 이는 《프루스트와 오징어》로부터 10년 뒤에 출간될 후속작 《다시, 책으로》를 예견하는 것이기도 했다. 독서의 성패는 문자를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며 깊이 읽는 일에 달려 있다.
디지털화된 기기들을 통해 순간 접속에 익숙해지고 숏폼 콘텐츠들이 유행하는 지금, 매리언 울프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어떻게 독서를 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를 묻는 시대가 된 것이다.
독서는 단순히 문자를 해독하는 것이 아니다. 글자를 시각적으로 인지하고, 뇌가 그 정보를 처리하고, 그것을 우리의 기억과 연결시키고, 누적된 지식을 통찰과 성찰의 토대로 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삶의 지혜로 탈바꿈하는 경이로운 일이다.
이 과정이 매리언 울프가 한결같이 강조하는 ‘깊이 읽기’다. 즉각적이고 찰나적인 자극에 길들여진 디지털 시대, 매리언 울프는 《프루스트와 오징어》를 통해 인류가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한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