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인공지능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디지털 신비주의’
인류는 깊은 불안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 확신을 더는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와 인공지능으로 촉발된 무의식적인 불안 가운데 하나는 도대체 인간이 왜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지, 그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 탓에 생겨난다.
인간이라는 종은 인공신경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디지털 기기보다 더 뛰어난 저장 능력이나 계산 능력을 보여주어야만 존재할 권리를 가질까?
인간과 인공지능은 서로 비교될 ‘상품’이 아니다
인간은 고유한 ‘세계 관심(관계를 맺으려는 무의식적 본능)’을 타고난다. 세계 관심의 출발점이자 원천은 인간의 몸이다. 몸은 감정의 집일 뿐 아니라 지성을 키우는 기초이다. 또한 몸은 두뇌와 현실세계가 맞물리는 접점이다.
몸을 통해 현실과 교류하면서 두뇌가 발달한다. 회로로 이뤄진 인공지능 기계는 몸을 가지지 않는다. 몸이 없으니 인간과 같은 관심은 생겨 날 수 없다.
인공지능 기계를 몸의 시뮬레이션과 연결한다고 해도 이는 회로로 입력되지 않는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또 생각하는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늘 외부 현실과 교류해야 한다. 컴퓨터는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도 몇 년이고 잘 작동한다.
인간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 컴퓨터는 다른 컴퓨터가 없어도 잘 작동한다. 인간은더불어 사는 사람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체 기능에 변화를 일으킨다.
인간 본연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
디지털 시스템은 잘 통제할 수만 있다면 환상적인 도구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 곧 아날로그 인간관계를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디지털 중독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만들어 건강을 해친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이 이런 위협에 취약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구가 입증하듯, 디지털 단말기는 10세 미만 아동의 감정과 인지능력 발달을 저해한다.
또한 최신 연구는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의 증가 규모가 무서울 정도라고 확인해 준다. 외로움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신경계를 활성화하고, 이는 향정신성 약품의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
우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회복해야 한다. 인간 본연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디지털 시스템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디지털 단말기를 도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논쟁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정작 중요한 유일한 물음은 시스템이 우리에게 봉사하느냐, 아니면 우리가 시스템에 지배되느냐이다.
도구로 쓸 것인가, 도구로 전락할 것인가. 디지털 상품이 우리의 능력을 좀먹는다면, 그래서 우리를 중독에 빠지게 해서 무력하게 만들어 조작하기 쉽게 한다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게 아닐까.
자의식을 회복하고 자존감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디지털 상품이 우리를 끌어들인 수동적인 소비 행태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젊은이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주고 진정한 실력을 갖추도록 장려해야 한다.
왜 실리콘밸리의 IT기업 대표들이 자기 자녀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지 아는가? 어째서 그들은 수업에서 디지털 단말기를 쓰지 못하게 하는 학교에 아이를 보낼까?
우리의 목표는 학교와 일터에서 인간성을 지켜내는 것, 휴머니즘을 방어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로써 지구의 천연자원을 아끼며 디지털 시대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을 우리는 직접 찾아야 한다.
- 사회적 소외나 연대가 인간 사회와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를 꾸준히 펼쳐온 신경과학자 요아힘 바우어의 《현실 없는 현실》 중에서
※ 인사이트는 《브레인》에서 선정한 뇌과학 도서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인간의 뇌에 대한 아포리즘 및 다양한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