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철학자, 물리학자들에게 듣는 삶의 태도
많은 이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것이 더 좋은 삶의 태도인지 고민하며 수도 없는 책을 뒤적여본다. 하지만 우리가 찾는 답은 의외의 방향에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는 과거 종교인들이나 철학자들을 통해 삶의 고민과 의문들을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주의 근원은 무엇인가?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삶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인간이 역사 이래 품었던 거대한 질문들에 대해 자연의 증거를 통해 대답하고자 나섰고 신만이 알 것 같았던 답들에 대한 단서가 하나하나 발견되고 있다.
물리학자들을 현대의 철학자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대단한 과학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을 향해 나아갔던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한다. 광막한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천재성과 운으로도 부족했다.
물리학자들이 분투하고 전념할 수 있게 해준 동력은 무엇이었으며 그 끝에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에서 저자 브라이언 키팅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9인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에 대한 통찰을 걸러내어 어느 삶에나 결정적일 깨달음과 용기를 전하고자 했다.
나는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모른다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미래를 조금도 내다볼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이 품은 미지를 마주한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존 매더는 말했다. “우리 모두가 틀렸단 사실이 발견되는 것만큼 과학자들을 기쁘게 하는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물리학자들에게 세상에 대해 무언가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건, 설사 그 자신은 틀렸다는 뜻이라고 해도 절대적인 선이다. 우주의 무한함을 맞닥뜨리며 사는 그들은 과학계 최고의 영예를 획득하고도 좀처럼 자신의 공을 강조하지 않는다. 자신이 과학이라는 거대한 태피스트리에 실 한 가닥을 기여했을 뿐이며, 아직 그 의미조차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세상에 알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다는 건 이 책의 물리학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동력이다. 내가 지금 짜낸 실오라기 하나가 얼마나 위대한 그림을 완성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의 시선을 통해 본 세상은 알 수 없어서 경이롭고 설레며 가능성으로 넘친다. 이 책에서는 영국 현대 초현실주의의 거장 마크 에드워즈의 그림을 수록해 한 치 앞을 모르면서도 멀리 보기 위해 발돋움하고 걸음을 내딛는 인간만의 용기와 지혜를 더욱 직관적으로 와닿도록 했다.
과학도 사람 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 책은 한때 노벨물리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결국 상을 타지 못한 물리학자 브라이언 키팅이 살아 있는 수상자 9인을 만나 나눈 대담이다. 그는 이 대화 속에서 이들 물리학자에게는 예상치 못한 면모도 하나 발견했다.
그들은 학문에 푹 빠진 사람들이지만 방구석의 외골수가 아니다. 물리학에서도 누군가가 혼자 천재적인 발상을 떠올리면 그것만으로 혁신이 일어나던 시절은 끝났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정부의 펀딩을 받아내야 하고, 초기관, 초국가 협력을 통해 연구하고, 전 세계의 과학계에 검증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아 결국 혁신을 일군 과학자들에게 결정적이었던 것은 사람을 헤아리는 힘이었다.
혹독한 동료 심사에 귀 기울이고 오히려 그 속에서 발전의 단서들을 알아내는 회복탄력성, 동료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사회성 없이는 과학도 불가능했다.
이 책의 물리학자들은 원래 그런 기질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그 필요성을 깨닫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력했던 이들이다. 현대사회를 개인적인 사회라고 말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어떤 것도 혼자 해낼 수 없는 시대다.
과학도 결국 사람 간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했던 이들이 모두가 천재인 분야에서도 한 끗 차이를 만들어냈다. 경제적 쓸모라는 틀에 맞춰 모든 것이 손쉽게 뒤흔들리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읽은 그들의 이야기는 진정 멀리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본질에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재고하게 한다.
이 책은 그들의 연구 대신에 그 연구에 이를 수 있었던 삶의 자세와 수많은 실패와 성취가 안긴 깨달음을 담았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