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치매 환자와 함께 고통받는 돌봄자들

내맘뇌맘

브레인 104호
2024년 05월 20일 (월)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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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 증가에 따른 돌봄 위기 문제

치매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뇌가 후천적으로 외상이나 질병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손상돼 인지기능과 행동에 문제가 생기고, 일단 발병하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다. 2000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지 17년 만에 고령사회가 되었다. 문제는 증가 속도이다. 이제 초고령사회로 가면서 치매 환자가 급속히 늘 것이고, 이는 사회문제화할 수밖에 없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치매 환자가 100만에 달한다. 노인 빈곤 문제와 더불어 치매, 돌봄 위기 문제는 개인, 가족, 지역공동체를 넘어 국가가 풀어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중앙치매센터는 향후 치매 환자 증가 수치를 2039년 200만 명, 2050년 300만 명으로 예측한다. 치매 환자에 대한 사회적 비용 보고서에 의하면 2010년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이 1,851만 원이었고, 2018년에는 2,042만원으로 추정된다. 치매 정도가 중증일수록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이 증가하고, 초경도(1,491만 원)에 비해 중증(3,202만 원)의 관리비용은 약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치매는 소위 가족의 병으로 불린다. 치매 환자의 가족 돌봄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다.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는 24시간 돌봄은 경제활동을 제한받을 뿐 아니라 가족 간 갈등으로 가정이 파탄에 이르기 십상이다. 환자와 함께 자살을 감행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치매 환자 돌봄자가 ‘보이지 않는 제2의 치매 환자’가 되는 악순환

우울감과 치매 발병의 연관성을 교차 분석한 결과를 보면, 둘의 상관관계가 뚜렷하다. 우울증은 알츠하이머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 구성원이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경우는 매우 흔하며, 이는 다시 치매 발병율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가족 돌봄자들의 이 같은 어려움을 해결할 방안이 꼭 필요한 이유이다.

국가인권위원회(2018)의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의 45.9퍼센트가 자신의 건강 악화를 걱정하였고, 25.6퍼센트가 정서적 스트레스를 호소했으며, 20.8퍼센트는 생계 활동의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이러한 스트레스, 우울, 불안 등의 정신건강 문제가 동반되면서 제2의 환자를 만드는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초기 치매 환자의 경우, 대부분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돌봄을 한다. 중증으로 진행하면 전문시설로 옮기는데, 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 역시 중증 치매 환자 돌봄의 어려움을 겪는다. 노인요양시설 요양보호사들이 느끼는 치매 환자 돌봄의 부담감은 가족의 경우보다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환자 돌봄의 높은 부담감은 돌봄 행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가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삶의 질 만족도 또한 환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사 지원 요양보호사들이 겪는 문제는 환자와 환자 가족의 과도한 요구와 갈등, 업체와 시설의 인력 충원 부족 등이다.

돌봄자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돌봄 당사자와 치매 환자의 삶의 질이 동반 저하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돌봄자의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한 여러 방안이 따라야 한다. 이는 치매 환자 돌봄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기도 하다. 

돌봄 노동자들의 고통

가족 돌봄자들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치매 환자 돌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치매에 대한 이해와 돌봄 방식에 대한 전문 지식의 부족은 돌봄 행위를 더 힘들게 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한 연구에 의하면, 일반 환자 돌봄자가 우울증을 겪는 경우는 3퍼센트 정도인 반면 치매 환자 돌봄자들은 47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병력은 나중에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의 위험을 높인다.

가사 지원 요양보호사에 관한 한 실태조사를 보면, 치매 환자나 그 가족으로부터 욕설, 비난, 고함 등을 당한 경우가 25.2퍼센트, 주먹질이나 꼬집기, 밀치기 등 신체적 위협을 당한 경우가 16퍼센트이다. 성희롱, 성적 신체접촉 경험이 있었다는 경우도 9.1퍼센트나 된다. 요양보호사 업무 외의 활동이나 초과 업무를 요구받은 경우는 10.1포센트이다.

어떻게 대응했냐는 물음에는 그냥 참고 일한다는 답이 44.6퍼센트이다. 37.5퍼센트는 소속기관에 보고해서 대응했다고 답했다. 13.2퍼센트는 가족에게 직접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보다 훨씬 심각한 갑질 피해를 보고한 자료들도 있다. 요양보호사 53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근무 기간 전체로 확대해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1.3퍼센트가 치매 환자에게서 성희롱, 폭행, 폭언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상황에 인력 충원도 안 되어 업무 과부하에 처하면 부작용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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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자들을 돌보는 방안이 절실하다

어떻게 하면 돌봄자들을 돌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대학원에서 ‘치매 환자 돌봄자 대상 뇌기반 치매 예방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치매 환자 돌봄자가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치매를 예방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영국의 바바라 포인턴Barbara Pointon은 가족 간병인으로 남편이 치매에 걸리자 직장을 그만두고 16년간 남편을 돌봤다. 그는 24시간 전적으로 남편을 간병하면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단절을 경험했다. 이 과정을 두 편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알리며 가족 간병인의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보건서비스(NHS)’ 법률 개정에 앞장섰다. 결국 영국 정부와 NHS는 간병인의 권리와 간병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했다. ‘간병인 동등 기회 보장법’이라는 법률을 통해 요양시설과 병원뿐 아니라 가정 간병인에게도 동등한 지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2018년 급성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고 2020년 세상을 떠났다.

많은 돌봄자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려고 노력하지만, 가족들이 치매 환자의 말만 듣고 오해하는 경우가 숱하다. 주변의 그릇된 시선도 돌봄자에게는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자존감마저 손상받는다. 

기존의 치매 교육은 돌봄 전문 인력에 한정돼 있다. 이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요양보호사뿐 아니라 치매 환자의 가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계발되어야 한다. 또한 돌봄자가 겪어야 할 정신적 어려움을 해결할 정서 안정 교육도 절실하다. 치매 환자의 가족과 요양보호사 모두 치매와 돌봄에 대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환자를 더 잘 돌볼 수 있고,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도 지킬 수 있다. 

고통 속에서 좌절하지 않기 위해 꿈꿨던 일이 이루어지다

필자 역시도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전 가족 치매 환자 돌봄을 하면서 치매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치매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젊은 시절, 환자 돌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다른 가족들과의 갈등이 더 고통스러웠다. 결국,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24시간 집안에서 생활하면서 ‘저 담장 너머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하는 상상도 많이 했었다. 어느 날 대문 주변에서 민들레꽃을 발견하고는 사람들에게 밟혀가면서도 꿋꿋하게 꽃을 피운 모습이 내 인생과 닮아 보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며느리인 내가 밥을 안 줘서 배가 고프다고 밥을 얻어 드셨던 어머니. 그로 인해 마을에서 못된 며느리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서 잠자리에서 날마다 기도했다. 제발 이대로 영원히 잠들게 해 달라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했던 그 시절, 화초들과 대화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이런 경험을 담아 이다음에 책을 써볼까 하는 꿈을 꿔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치매 환자 돌봄을 했던 경험을 통해 치매 예방 교육 강사가 되고, 치매에 관한 책을 내게 됐다. 고통 속에서 나 자신을 위로하며, 좌절하지 않기 위해 꿈꿨던 일이 어느덧 이뤄진 것이다. 25년간 치매 돌봄을 한 종갓집 외며느리로서의 힘겨운 삶이 헛되지 않음에 감사한다.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매 예방 교육

대학원에서 뇌교육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해오던 치매 강의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원리에 따른 뇌운동, 명상, 호흡 등을 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특히 뇌파 수업을 하면서 내 뇌파를 측정한 결과치에 치매 환자를 돌볼 때 심하게 앓았던 흔적이 보여 놀라웠다. 

주변에 치매 환자를 돌보던 이들이 노년에 여러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많이 목격했는데, 나 또한 현재 2년 넘게 파킨슨 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무엇보다 행운인 것은 초기에 빨리 발견해 스스로 돌봄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브레인》에 치매 예방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 거듭 강조했듯,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매 예방 교육이다. 젊은 사람이 치매에 관해 알아야 부모 세대의 치매를 초기에 알아챌 수 있고, 자신의 뇌 건강도 일찌감치 지킬 수 있다. 이것이 지금 현실적으로 가장 실효성 있는 치매 예방법이다.   

글_김숙희
누리치매예방교육센터 센터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통합헬스케어연구소 연구원. ⟪굿바이 치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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