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과컴퓨터를 살린 구원투수에서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는 SDX재단을 이끌고 있는 전하진 이사장
전하진. 국민들에게는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한글과컴퓨터(한컴)’이 부도위기에 몰리며 MS(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될 뻔하였을 때, 30대 1의 경쟁을 뚫고 CEO로 임명되어 불과 1년 만에 한컴을 되살려 낸 국민 벤처신화의 주인공으로 각인되어 있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분당을)으로 정계에 진출해 전문성을 살린 다수 법안 제정에 기여했다. 특히, 2014년 4월 통과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일명 전하진법)‘은 아낀 전기를 팔 수 있는 ‘수요자원거래시장(DR)’을 탄생시키며, 100년간 이어온 전력시장 거래방식을 민간의 참여와 시장 선순환을 이끈 법안으로 주목받았다.
지금은 민간주도, 디지털혁신 전환을 통해 기후위기 극복에 앞장서는 SDX재단 이사장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는 전하진 이사장을 재단 사무실이 자리한 판교에서 만났다.
Q. SDX재단은 이름 자체에서 ‘지속가능성(SDGs)’과 ‘디지털전환(DX)’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비영리단체와 차별성이 있어 보입니다.
맞습니다. 재단의 새로운 방향과 모델을 고민하면서, DX(디지털 전환) 기반의 지속가능발전(SDGs)이라는 방향성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디지털 한 사람이니까, 결국 이게 작은 탄소감축이 확산이 돼야 해결이 되지. 일부 기업 중심으로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죠.
저는 환경운동을 하기보다는 기후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 거냐 하는 쪽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기후위기라는 것은 기후기술 기업에게는 대박의 찬스인데, 그럼 이걸 어떻게 기회로 만들어서 그러한 산업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까. 기존의 환경단체들하고는 다른 형태의 모델을 만들다 보니 1년 반을 준비해서 재단 출범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3년이 되었는데, 재단을 하면서 정말 놀라운 경험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업을 해왔던 입장에서 보면 후원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시너지가 참으로 굉장합니다.
Q. 벤처 1세대 기업가, 국회의원 그리고 지금은 기후위기 해결을 모색하는 비영리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어떠한 삶의 가치가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실은 제가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던 분야는 교육과 일자리 문제였어요. 미래에는 많은 일들이 대체될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그러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상상이 잘 안되었죠.
많은 고민을 하다가 나름대로 얻을 결론은 ‘자아실현’이었어요. 메슬로우가 얘기한 단계별 욕구들이 기술 발전과 시스템으로 대체되면서 결국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싶었던 거죠.
그렇다면 이것을 잘하게 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가 하고 들여다 봤을 때, 지금의 주거 환경과 도시 모델로는 자아실현을 하는데 마땅치 않는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왜 우리들은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있는데, 자연이 주는 이 에너지를 받아서 모두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 수 있게끔 하는 도시가 아니라는 거죠. 과연 앞으로 지속적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그러다가 새로운 도시의 그림을 그려본 거에요. 논리적으로, 분석적으로 한 게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졌던 것들이 그냥 연결되면서 칠판에 그냥 적은 거에요. 그 세 가지가 제로베이직(Zero Basic), 어반베이직(Urban Basic), 컬쳐페이직(Culture Basic) 이에요.
Q. 다양한 활동 과정에서 부동산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논문 제목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주거환경에 관한 연구(A study on the new residential environment in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ge)'입니다. 요약문에도 말씀하신 세 가지가 나와 있는데, 계속해서 이러한 발걸음을 해오신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만들어가는 데 몇 년이 흘렀습니다. ‘선빌리지 포럼’이라는 형태로 계속해오면서, 현재의 SDX재단 이전 ‘에스라이프재단’에서 이런 활동을 계속해온 것이죠.
매달 이런 포럼을 열고, 에너지 저감기술 등 관련 전문가 분들이 발표하고 논의하고, 솔루션을 찾는 과정을 가져왔습니다. 박사논문도 그러한 과정에서 주제를 이렇게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에는 넣지 못하고 부록에다가 그냥 이런 도시가 되면 좋겠다고 남겼습니다.
‘제로베이직’은 미래 인재들이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자급자족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는 데, 신재생에너지 등 지속가능한 기술을 접목하여 이것이 구현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어반베이직’은 도시 문명들이 분산화, 내재화 돼야 되는데. 이게 이제 언택트로 가능해진 거예요. 원격교육과 원격의료 서비스가 가능해지니까요. 어디서나 평등한 어떤 문화 수준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거죠.
마지막으로 ‘컬처베이직’은 자아실현을 위한 공동체가 존재하는 도시로 개념을 잡은 거에요. 기존 도시(city)’와는 구분을 위해서 ‘Siti’라는 브랜딩으로 제시한 겁니다.
▲ 벤처 CEO, 국회의원을 거쳐 지금은 기후변화 대응 민간주도 탄소감축 비영리재단 이끌며 담대한 도전에 나선 전하진 이사장
새로운 주거환경은 첫째,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수익기반이 조성되어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는 환경(Culture Basic)이고 둘째, 첨단도시기능이 탈공간적으로 내재화되어 안전이나 교육, 보건, 엔터테인먼트 등 최상의 도시편의성이 지리적 제한 없이 제공될 수 있어야 하며(Urban Basic) 마지막으로 물, 에너지, 식량, 폐기물의 자원화와 인터넷 등의 기반시설을 자립하여 기초생활비가 최소화되고 지속가능한 주거환경(Zero Basic)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개념을 첨단자족도시 Siti라 정의하고 제안하였다. - [출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주거환경에 관한 연구‘ 박사논문
Q. 국회의원 시절 발의하신 ‘전기법개정안’ 덕택에 지금 아낀 전기를 팔 수 있는 새로운 전력거래시장이 열린 것인데, 어찌 보면 지금의 활동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숭고한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전기법 개정안도 그냥 논리적으로 당연히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그걸 안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보았는데, 당시 엄청난 반대에 시달렸어요. 제가 그래도 국회에 4년 동안에 제일 보람 있는 일이 그 전기법 개정안이에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들한테 지금 혜택이 가니까요.
저는 ‘시티(siti)’라는 머릿속에 시나리오가 있으니까, 어떻게 하든지 제로베이직을 구현해야 하니까. 신재생에너지에도 관심이 많았고, 전기를 줄이는 거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로 시티’라는 도시를 어딘가에 구현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문제는 기존 도시에 이런 것을 구현하려면 법의 테두리 내에서 바꾸어야 하는데 어렵죠. 그러니까 어딘가에 프리존을 만들어서 최적화된 새로운 도시기능을 구현하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DMZ나 북한 같은 곳이 대상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중앙집중식으로 되어 있던 메인 컴퓨터들이 만약 PC가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용량을 절대 감당 못하거든요. 또,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한 방식이 바뀌면서 개인들의 진화를 도운 것이죠.
그런데, 도시를 보면 모든 게 중앙집중식입니다. 발전도 그렇고, 물도 그렇죠. 인도네시아는 지금 수도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사람들이 계속 몰려드니, 중앙집중식 인프라를 가지고서는 감당을 못하는 겁니다.
인류가 정말로 지속가능 하게 살려면, 분산되어서 하늘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자급자족하는 형태로 개념적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국내 첫 민간주도탄소감축포럼 출범 (2022년 6월 | 출처= SDX재단 홈페이지)
Q. 기후위기 극복은 참으로 거대한 목표이지만 결국 지구상에 살아가는 개개인의 ‘의식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담론과 이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평소 ‘홍익인간’ 정신을 강조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제가 ‘선빌리지’에서부터 이런 얘기를 한 지가 벌써 7~8년 되는데, 처음에는 유토피아 같은 얘기였는데. 어느덧 실현 가능성이 있는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언택트가 일상화 되면서, ‘어반베이직’이라는 개념이 현실로 다가왔고. ‘제로베이직’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고. 이제 남은 것은 자아실현에 관한 ‘컬쳐베이직’이죠.
제가 기후위기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ESG가 과연 제대로 가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어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형태로 조직의 미션 자체가 바뀌어야 뭔가 돼도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이 재단을 하다 보니까 그런 일들이 가능한 겁니다.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분들이 어떤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죠. 그것을 위해서 얻어지는 과실은 서로가 나누고, 우리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개인도 훨씬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죠.
뒤돌아보니까 그런 생각을 갖고 존재하고 있는 곳들은 이미 존재했습니다. 종교가 그렇죠.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100년을 가면 훌륭한 기업이라고 얘기하죠. 결국 돈을 추구하는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거죠.
지금 되돌아 보니 지난 수백 년의 산업화 이후는 잘못 살아온 겁니다. 과학의 발달이 많은 기여를 했지만, 이제는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은 ‘영적’ 가치의 추구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수천년 전부터 동양에서 그런 얘기를 해왔었는데, 이제는 동서양이 만나는 지점에 와 있잖아요.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문명에 아주 엄청난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의 수준까지를 공유하지 못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한 인식을 공유하게 끔 만드는 게 결국 디지털 세상에서 일어나야 될 일들인 거죠. 엄청난 지적인 어떤 왕성한 활동이 있지만 그 방향성이 어디냐가 핵심입니다. 그럼, 방향성이 뭐냐 하면 결국 ‘홍익’ 입니다.
▲ “기후위기 대응 위한 지속가능 열쇠는 '우리’에 담긴 홍익 DNA에 있습니다.”
Q. 한류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는 샘 리처드 교수의 강연을 들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극복에 한류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홍익인간 이게 결국은 최근에 한류의 물결과 맞아요. 사실은 세계가 주목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이 된 건데 샘 리처드 교수 얘기를 들으면서, 만약 홍익인간을 알았으면 홍익이라고 얘기했을 텐데. 그걸 잘 모르는지 ‘독특한 공동체’ 라고만 계속 얘기를 하더라구요.
어찌 됐든 간에 우리도 알게 모르게 그런 것들이 우리 문화에 자꾸 반영되어 있는 것이죠. 제가 아리랑TV PD에게 물어봤어요. ‘우리 와이프’를 뭐라고 번역하는지. ‘our wife’로 하면 외국인들이 뭐라고 그러겠어요.
세상을 이롭게 하라고 우리는 배우고 자랐고, 세상을 이렇게 해야 되는 그것을 만약에 전 인류가 구현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거 아니냐는 거죠. 그걸 못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우리가 아직 수준이 떨어져서 안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이제는 교육기본법 2조로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기획자’ 로서의 마인드를 갖고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에 몰입한다고 하셨는데, 평소에 좋은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잘 의식은 못하겠는데 저는 잠을 무지하게 잘 자요. 엎어지면 잠들고 깨면 걷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항상 몸이 시키는 대로 해요. 몸이 피곤하다고 생각하면 그냥 무조건 자는 편입니다. 몸이 시키는 대로 사는 건데, 그래서인지 머리가 찌부등 하다든가 무겁다든가 이런 느낌을 잘 못 가져요.
저는 되게 민감해요. 그러니까 이렇게 막 몸에 이렇게 약간 이상이 있으면 좀 예민해집니다. 그래서 그냥 웬만하면 몸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그냥 그게 나름 건강 비결 아닌가 싶습니다.
정리. 장래혁 편집장 | 사진. 김경아
[Box] 리월드포럼 2023: 넷제로 금융 | 2022년 4월
글로벌 자본시장이 이미 넷제로 금융 스탠다드 구축 임무에 착수한 가운데, 한국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진단 하에 SDX재단이 준비한 ‘탄소감축 전환금융’ 포럼.
현재 기업금융의 대부분은 기후대응을 고려하지 않는 전통적 사업 영역에서 발생되며, 기후 관련 Transit Finance는 불과 5% 미만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전망에 따르면, 2025~2030년에는 전통적 사업 영역이 25~30%로 축소되고 Transit Finance가 30~45%, 새로운 지속가능 금융이 10-15% 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중립 추진 금융연합체인 NZBA(Net Zero Banking Alliance)에 가입 선언을 필두로 40개의 국가에서 103개 은행이 2050년까지 탄소배출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미션에 동참하는데, 전 세계 은행 자산의 44%가 넷제로 금융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