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변한다. 반복되는 경험과 행동에 반응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신경 회로를 재조직한다. 그런데 뇌의 시냅스를 변화시키는 것은 반복적인 신체 행동만이 아니다. 정신적 활동 역시 신경 회로를 더 광범위하게 바꿔놓을 수 있다.
21세기 디지털 기술은 우리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놓고 있다. 종이책과 신문의 긴 글을 읽고 내적으로 깊이 숙고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나는 수많은 정보들을 스캐닝하여 필요한 정보들을 가려내고 진위를 평가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읽기 도구가 종이에서 디지털 기기로 바뀜에 따라 사람들의 뇌가 실질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이 실험은 구글 검색 숙련자들과 초보자들의 그룹으로 나누어 검색하는 동안 피험자들의 뇌를 스캔했다. 첫날 측정했을 때 숙련자들의 경우 외측 전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된 반면 초보자들은 이 부분에서의 활동이 미미했다.
그런데 6일 후 동일한 실험을 실시했을 때 초보자들의 뇌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초보자들은 하루 한 시간씩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6일 후 동일한 실험을 했을 때, 초보자들의 외측 전전두엽 피질이 집중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단지 5일간의 실험으로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않던 이들의 뇌신경 회로가 재구성된 것이다.(G.W. Small, “Your Brain on Google: Patterns of Cerebral Activation during Internet Searching”)
14~15세기 인쇄술의 발명은 소수가 향유하던 정보를 대중으로 확산하고 문해력을 높임으로써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 그런데 21세기 디지털 기술은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오히려 문해력은 낮아지고 있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 긴 문서를 집중해서 읽고 깊이 생각하기보다 이리저리 검색하고 분절화된 텍스트들을 대충 훑어보는 비선형적 읽기 형태가 지배적이 되었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활자인 책보다 스마트폰의 단문 텍스트와 동영상에 익숙한 청소년 세대들에게 이러한 비선형적 읽기가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이전 2012년과 2018년 사이 OECD 국가 15세 청소년들의 인터넷 사용량은 이미 66퍼센트나 증가했다. 한 주에 35시간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성인의 주간 법적 근무 시간에 육박한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학교 교육이 원격 수업에 의존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을 교육에 융합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 피할 수 없는 디지털 교육 환경 속에서 건강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한 시점이다.
인터넷 시대에 태어나서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이 시대에 맞는 문해력을 갖추는 것이다. 20세기의 문해력은 신뢰할 만한 제공자에 의해 잘 정리된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이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백과사전을 찾아보라고 할 수 있었고 그 정보들이 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요즘은 구글이나 네이버를 검색하면 수백만 가지의 정보를 나열하지만 그 중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참인지 거짓인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21세기의 청소년은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OECD는 2018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바탕으로 올해 5월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계에서의 문해력 개발(21st-Century Readers: Developing Literacy Skills In a Digital World)”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편향된 정보를 가려내는 ‘디지털 기술(digital skills)’을 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은 사실과 의견을 좀 더 잘 구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상에 올라온 글에 나의 의견을 더하기 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누가 이것을 썼는가?,”누가 이 영상을 만들었는가?“,”이 글이 타당한가?“와 같은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비판적으로 정보를 평가하는 것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를 통한 학습 환경이 갖고 올 부정적 영향으로 또 하나 우려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문해력의 격차를 더 증폭시키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가 보여준 좋은 소식은 자신의 역량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자기효능감과 같은 동기부여 구성요소들을 강화시키게 되면 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도가 높아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문해력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인식이나 자기효능감보다 문해력 향상에 더 큰 변화를 준 요소는 인터넷 상의 정보의 속성을 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소양과 디지털 환경에서의 문제해결 전략을 습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을 알고 있는 학생들은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네비게이션과 하이퍼링크들 사이를 이동하고 필요한 정보들이 있는 페이지들에서는 충분한 시간 머무르면서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고 정한 목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전통적 가치들이 사라지고 진위를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인터넷에 쏟아지고 있는 지금, 정보의 속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상충하는 이해관계와 딜레마들 사이에서 입체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21세기 디지털 문해력을 갖춘 민주시민의식일 것이다.
뇌교육은 정보처리기술이라고도 말한다. 뇌를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정보를 입력받고, 처리해서, 출력하는 원리와 방법을 습득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이다. ‘나’가 없는 상태에서의 정보의 입출력은 결국 정보에 종속된 나를 만들 위험성을 갖기 때문이다.
글. 국제뇌교육협회 김지인 국제협력실장 jkim6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