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인문학] 균등의 가치를 좇는 국가의 이상을 회복할 책임

건강한 관계를 맺는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의 필요성

브레인 107호
2024년 11월 30일 (토)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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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인 인문학 (사진_게티이미지 코리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가치, 삼균주의

1948년 제정된 우리나라 헌법은 임시정부 시절부터 광복 후 건설할 신국가의 핵심 가치로 발전시켜 온 삼균주의를 직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삼균주의는 조소앙 선생이 일제강점기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을 통합할 수 있는 국가이념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홍익인간 사상을 토대 삼아 제시한 것이다. 

삼균주의가 경제력의 균등, 정치권력의 균등, 교육의 균등을 통해 지향한 완전한 균등의 상태는 민주주의 가치에 따른 기회의 평등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데 필요한 능력과 제반 조건까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제헌헌법의 이러한 균등 정신의 예로 많이 언급되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 시행한 농지분배이다.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86조 농지분배 조항은 경제력의 균등을 이루는 삼균주의적 방법으로 제시된 정책이었다. 이 조항으로 1950년~51년 사이 농지분배가 이루어졌고, 농지분배가 완료되자 전체 농경지의 64퍼센트이던 소작지가 8.1퍼센트로 감소했다. 

상속 재산의 대물림으로 인한 불평등을 없애고, 다수의 국민이 기회의 균등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신흥 독립국들과 달리 정치적 안정 속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농지분배였다. 


이상 국가의 가치가 사라진 시대

최근 정치권에서는 부의 재분배 제도로 여겨졌던 상속세 개편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부자들이 세금을 덜 내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상속세 개편안으로, 대기업과 소수 초부유층 외에 수혜를 입을 대상은 현재 50~70대 연령의 베이비부머 세대다. 이들은 현재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한 세대이면서,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세대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관심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균등이 계층을 양극화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금, 베이비부머 세대가 유권자로서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다음 세대가 살아갈 국가의 미래를 성찰하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대한민국이 처음 꿈꾸었던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의 균등을 이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이상과는 달리, 우리 사회는 압축적인 경제성장의 시기를 거치면서 공동체적 가치가 빠르게 사라지고 극도의 경쟁사회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룬 경제성장의 결과, 부의 불평등은 심해지고 사회는 분열되었으며 OECD 회원국 중 가장 행복하지 않은 나라로 꼽히고 있다. 


건강한 관계를 맺는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의 필요성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그대로 투영된 학교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의 사회적 거리 두기와 기후 위기로 인한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으면서 정신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2024년 발표된 학생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의 주관적 행복감은 점점 떨어지고, ‘자주’ 또는 ‘항상’ 외로움을 느끼는 학생들의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 자살 예방, 생명 존중, 학교폭력 근절 등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시행해 왔다. 올해부터는 ‘마음훈련 프로그램’을 일선 학교에 보급한다. 2026년까지 전국의 6백여 개 학교로 확산한다는 목표다. 총 4시간으로 구성된 이 수업 외에도 마음돌봄을 학교의 문화로 만들어 가기 위해 ‘마음챙김’ 동아리 활동도 지원한다. 

교육부는 이러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학생들의 ‘나를 이해하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마음돌봄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공감 능력의 향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공감 능력을 통해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을 때 인간은 아프다.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같은 본성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타인은 나와 한정된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 경쟁하는 대상일 뿐이다. 청소년들은 좋은 성적을 얻어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해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단절되고, 성인들은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 억압하며 위축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절대적인 가치는 개인의 자유다. 자유의 가치가 우리에게 정치적인 평등과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를 가져왔지만, 생존과 물질적 소유를 추구하는 이기적 욕구를 정당화하면서 개인주의적 경쟁사회를 만들었다.
 

공감의 본능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는 때

생물학 분야의 DNA 발견 이후 최고의 발견으로 평가되는 ‘미러 뉴런Mirror Neuron(거울신경세포)’은 대상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우리에게 본능적으로 내재한 감각임을 입증해 주었다. 

공감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 혹은 종교적 설득만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척박함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미러 뉴런과 또 더 나아가 인간의 특별한 기제로 진화한 ‘공유회로’의 발견으로 우리는 우리의 또 다른 본성을 ‘과학적으로’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 들어 우리 문화는 이미 단절된 개인주의적 인간관과는 다른 ‘공감의 시대’로 들어섰다. 그동안 물리적•경제적으로 세계화가 진행되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연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공감 기제의 활성화를 막는 우리 사회의 물질적 기반의 문제를 성찰하고 함께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음챙김(명상) 활동이 공감 기제를 회복하기 위한 개인 차원의 활동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차원에서는 경제적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물질적 기반을 바꾸는 것이다.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본질적 욕구가 공감의 시대를 열었으나, 물질적 기반에는 아직 이를 반영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각자도생하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다시 균등의 가치를 좇는 공생 국가의 이상을 회복할 책임은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기성세대에게 있다.  
 

글_김지인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실장.  jkim618@gmail.com 

참고 자료
• 교육부 누리집, 「학생 맞춤형 마음 건강 통합지원방안」, 2024. 8. 9.
• 송석윤, 「조소앙의 헌법사상-삼균주의의 형성과 전개」, 『헌법학연구』 제26권 제1호.
• 『시사IN』, 「물려받을 재산, 있습니까? 다가온 ‘대 상속의 시대’」, 2024.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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