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양의 뇌 이야기] 공감에 따르는 고통을 줄이는 방법

브레인 107호
2024년 11월 02일 (토)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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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양의 뇌 이야기_게티 이미지 코리아


내가 아플 때와 타인의 아픔을 느낄 때의 뇌 부위가 다르지 않아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영화 속 상황에 빠져들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감정이입을 합니다. 주인공에게 공감하며 몰입한 결과 웃고 울고 공포를 느끼죠. 일상에서도 이렇게 타인의 감정에 공명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기쁨이나 슬픔을 느낄 때 자신도 반사적으로 그 감정을 공유하게 됩니다. 

공감이란 이렇듯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의견에 따라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상태입니다.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도 기쁨, 즐거움, 슬픔, 고통스러움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습득한 능력입니다.

이 같은 공감 능력이 가능한 것은 공감을 뒷받침하는 신경 연결망이 우리 뇌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공감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됐는데, 특히 통증과 고통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이 갑자기 넘어지거나 누군가에게 맞는 장면이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아’하고 놀란 경험이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의 다친 상처를 볼 때면 자신도 몸이 오그라들면서 인상이 찌푸려지죠. 과학자들은 몸에서 통증을 느낄 때 뇌의 상태가 어떤지, 혹은 다른 사람이 아파하는 것을 볼 때 뇌의 상태가 어떤지를 연구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를 입었을 때 뇌의 상태와 다른 사람의 무릎에 난 상처를 볼 때 뇌의 상태를 비교하는 식입니다. 

이 주제에 관한 연구들에서 과학자들은 반복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스스로 통증을 느낄 때 활성화하는 뇌의 영역과 타인이 통증을 경험하는 것을 바라볼 때 활성화하는 뇌의 영역이 같다는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전방대상피질과 전방뇌섬엽의 특정 부분이 지속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이 넘어져서 아픔을 느낄 때도, 타인이 넘어져서 아파하는 것을 볼 때에도 똑같이 전방대상피질과 전방뇌섬엽의 특정 부분이 활성화한다는 것이죠. 
 

공감 능력은 우리 뇌에 본래 내재된 기능

인간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에 처한 사람을 보았을 때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이 공감 능력은 학습으로 터득하는 걸까요? 아니면 우리 뇌에 본래 내재되어 있는 특성일까요? 여러분은 언제부터 타인의 아픔에 공감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공감을 하도록 교육을 받은 후에 공감하게 되었습니까?

이 질문을 주위 분들에게 해 보니 직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의 관련 연구 결과들은 이런 직관적인 답변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 이탈리아의 한 대학에서 수행한 연구에서 연구원들은 원숭이가 손으로 물체를 잡을 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를 측정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연구원이 손으로 물체를 잡을 때 이 행동을 지켜보던 원숭이의 뇌에서도 같은 부위의 신경세포가 활성화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래서 이 거울 같은 특성을 가진 신경세포를 ‘미러 뉴런’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하는 행동을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마치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뇌가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관련 연구가 더 많이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역할하는 데 미러뉴런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공감 능력은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마스터키

공감 능력은 학습에 의해 더 향상되고 개발될 수는 있겠지만, 뇌에 내재되어 있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능력을 얼마나 잘 활용하며 일상을 영위하고 있을까요? 공감 능력을 우리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마스터키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삶의 많은 문제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적 관계에도 갈등과 대립의 문제가 크죠. 이 같은 문제를 법과 제도로 다 풀 수는 없습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단초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꽉 막힌 상황에서 우리 안의 탁월한 본성인 공감 능력을 발휘한다면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돌파구가 될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정서적 포용이 이루어지면 나와 너의 경계를 넘어 우리라는 관점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를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게티 이미지 코리아


 편향적 공감이 아닌 보편적 공감이 필요해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는 공감이 잘 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공감하기 어렵다면 괜찮은 걸까요? 작은 사회 집단 안에서 따돌림이라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큰 사회 집단간의 갈등은 분쟁이나 전쟁의 형태를 띠기도 합니다. 

이는 같은 집단 안의 한 무리 사이에 어떠한 아이디어가 공유되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친구들 사이에 몇몇이 누군가를 따돌리자는 데에 생각을 같이 해야 그것을 실행되게 되고, 사회 안에서 이익을 같이 하는 집단끼리 충돌하면 분쟁이나 전쟁이 발발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보면 타인과 공감하는 것이 항상 좋게만 작용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더 가깝거나 유사하다고 인식되는 개인이나 그룹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개인이나 그룹에 좀 더 이타적인 행동을 하죠. 나와 피부색이 같거나, 국적이나 고향, 출신 학교가 같은 사람에게 더 잘해주려고도 합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과 다른 인종에게 가해지는 통증에 대해서는 감소된 신경 반응을 보입니다. 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에게는 뇌가 공감을 잘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뇌에서 공감을 완전히 차단하거나 반사회적 반응까지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조건에 의해 공감 능력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내재적 공감 능력에도 불구하고 집단 따돌림을 행하고 전쟁에서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기도 하는 것이죠. 공감 능력을 차단하여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가 공공연하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인데, 이는 마치 마취제를 맞아 양심이 마비된 상태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감 능력에 있어서도 그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만 위하는 편향적 공감이 아니라, 사회와 인류 전체를 향한 보편적 공감이 필요합니다. 특히 지구촌 전체가 문화, 경제, 사회, 환경 등 모든 부문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인류 전체를 향한 보편적 공감 능력을 훈련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위기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타인에게 깊이 공감하면서도 번아웃 되지 않으려면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다 보면 힘들어서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공감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어 상대에게 도움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뉴스를 통해 가슴 아픈 사건을 접할 때, 내게 닥친 일이 아님에도 그러한 소식 자체가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 상황에 공감하면서 고통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공감 고통이라고 합니다. 

공감에서 고통을 느끼게 되면 그 고통의 원인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심리가 발동하고, 비사회적 행동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공감 고통이 오래 지속되면 스트레스가 증가해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전쟁 난민을 위한 자원봉사, 사건 현장을 많이 접하는 소방관, 응급실의 의료진, 트라우마 심리상담사 등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에 이런 번아웃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공감이 일어나면 이후에 뇌에서 두 가지 경로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공감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연민이란 우리가 흔히 측은지심이라고 일컫는 마음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겨 도와주려고 하죠. 이는 자신의 평판을 좋게 하려거나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면 공감에 따른 고통을 줄일 수 있다

공감이 연민으로 승화하면 사랑과 같은 긍정적 느낌이 생기고, 건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이미징 연구 결과들은 이러한 측은지심, 연민의 신경 네트워크가 우리 뇌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연구에 따르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때 전방뇌섬엽과 전방중대상피질이 활성화하고, 공감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피로의 증가를 느낍니다. 

동일한 참가자들이 그 후 연민 훈련을 하면 공감에서 느꼈던 스트레스와 피로가 줄고, 긍정적인 정서가 증가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내측안와전두피질, 협하전방대상피질, 복측선조체 등의 영역이 활성화하는 것이 관찰됩니다. 

연구에서는 결과적으로, 공감에 의해 생겨난 정서적 고통이 연민 훈련에 의해 긍정적 정서와 이타적 행동으로 승화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연민을 훈련하는 것이 공감에서 오는 고통을 극복하고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대응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타인의 트라우마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공감을 하면서도 번아웃 되지 않으려면, 공감 고통을 연민으로 승화시켜 긍정적 정서를 만들어 내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것은 훈련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글_양현정 한국뇌과학연구원 부원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통합헬스케어학과 교수

참고 문헌
• Lamm C et al. Meta-analytic evidence for common and distinct neural networks associated with directly experienced pain and empathy for pain. NeuroImage 54 (2011) 2492-2502.
• Singer T et al. (2014) Empathy and Compassion. Current Biology. 24(18):R875-R878
• Klimecki, O.M., Leiberg, S., Ricard, M., and Singer, T. (2014). Differential pattern of functional brain plasticity after compassion and empathy training. Soc. Cogn. Affect. Neurosci. 9, 873–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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