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트레이닝] 혹시 나도 음식중독일까?

뇌로 보는 세상

▲ 음식에도 중독이 있을까? (사진_게티이미지)



전 세계적으로 치솟는 비만율


'편세권'이라는 말이 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편의점이 있다는 의미로, 요즘 MZ세대가 집을 구할 때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꼽는다고 한다. 골목마다 편의점이 들어선 덕분에 냉동 음식부터 김밥, 라면,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수를 언제든 살 수 있게 됐다. 

건강을 위해 무엇을 먹어야 할지 잘 알고 있지만, 채소와 과일 같은 신선식품보다 아무래도 먹기 편한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에 손이 많이 간다. 농촌진흥청이 202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공식품 소비액은 코로나19 기간 중 7조 원 이상 증가했고, 라면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가공식품 역시 시장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공식품의 소비와 함께 비만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2023년 전 세계적으로 비만 인구는 약 29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24퍼센트에 해당한다. 세계비만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만일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비만 인구도 매년 증가하는데,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비만율은 약 35퍼센트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5~19세 아동·청소년 비만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아동·청소년의 비만율은 현재 약 8퍼센트에서 2025년에는 20퍼센트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 전 세계적으로 비만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사진_게티이미지)


음식에도 중독이 될까?

중독이 일반적으로 니코틴이나 알코올, 카페인 등 특정 물질로 인해 나타나는 증세라고 알고 있었다면 중독에 음식을 연결 짓는 것에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스마트폰 중독’이나 ‘게임중독’, ‘쇼핑 중독’ 같은 표현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사전에서는 중독을 ‘생체가 음식물이나 약물의 독성에 의하여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일’ 혹은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등으로 정의한다. 그렇게 보면 ‘음식 중독’이라는 표현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 뇌에는 강박적 행동을 유발하도록 정교하게 조직된 자체적인 화학물질이 있다. 바로 '도파민'이다.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서 화학적으로 조성하는 약물들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모방해 만들어진다. 

물론 아이스크림이 마약만큼 강렬한 열망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중독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물질이 뇌를 자극하는 속도인데, 패스트푸드 같은 가공식품은 뇌를 자극하는 속도가 약물보다 빠른 것으로 밝혀졌다. 음식에 관해 생성해내는 기억은 다른 어떤 물질보다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다. 그렇기에 어릴 적 먹은 음식에 대한 기억은 평생의 식습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단맛의 유혹

어떤 음식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기호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형성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아이는 시금치나 브로콜리 같은 떫은맛, 쓴맛, 신맛을 거부한다. 

자연에서는 그런 맛들이 독소나 부패한 상태를 의미하기에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맛들도 여러 번 반복해서 경험하면 뇌에 각인되어 견딜(먹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단맛은 그렇지 않다. 태아가 7~8주 정도 되면 미각에 특화된 세포가 발달하고, 태어날 때에는 혀 전체에 단맛을 느끼는 세포가 분포한다. 그래서 아기에게 설탕을 주면 웃고 고통도 덜 느낀다. 

소아과 의사들이 아이에게 주사를 놓고 사탕을 주는 이유이다. 설탕이 지닌 진통제 같은 힘은 청소년기까지 지속된다. 뇌는 설탕을 육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인식하기에 단맛은 단순한 즐거움 그 이상이다. 


뇌가 좋아하는 맛을 찾아서

음식중독과 관련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몇 가지 음식이 있다. 아이스크림, 쿠키 같은 달콤한 디저트, 빵이나 떡 같은 밀가루 음식, 짭조름한 과자나 햄버거나 피자 같은 고지방 음식, 탄산음료나 주스처럼 설탕이 함유된 음료 등이다. 

뇌의 원시적 욕구를 자극하는 방법을 알아낸 가공식품 회사들은 필요하지 않은 음식에도 설탕, 소금, 지방을 비롯한 다양한 식품첨가물을 넣기 시작했다. 더불어 언제든 사서 가열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편리한 가공식품들을 개발했다.

연구에 따르면 설탕과 지방이 각각 따로 작용할 때보다 결합했을 때 뇌를 더 많이 자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설탕은 혀 위에 분포된 미뢰가 뇌에 신호를 보내고, 지방은 입천장부터 뇌까지 이어지는 삼차신경에 의해 신호가 전달된다. 설탕과 지방이 모두 함유된 음식은 두 경로를 모두 활성화하기 때문에 뇌는 열렬하게 반응하게 된다. 뇌는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음식에 가장 크게 자극되기에 위에서 언급한 달고, 짭조름하고, 기름진 음식을 자꾸만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맛이든 촉감이든 한 가지 감각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 싫증을 느낀다. 그러고는 더 강한 자극이나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그렇지만 이 같은 특성을 식품회사들이 놓칠 리 없다. 식품회사들은 포만감을 느껴 그만 먹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고, 또다시 먹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냈다.

그것은 제품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조금만 다르게 해도 더 오랫동안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맛의 감자칩, 아이스크림, 음료수가 매년 계절별로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거기다 ‘한정 생산(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게임은 끝난다. 

식품회사들의 집요한 노력으로 군것질은 이제 우리의 네 번째 식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군것질의 종류는 과자, 초콜릿바, 주스같이 대부분 가공식품이고, 어린 시절부터 과자나 아이스크림, 음료수를 섭취하는 습관은 성인까지 이어진다.
 

▲ 가공식품은 음식중독과 관련 밀접한 관련이 있을까? (사진_게티이미지)


알코올 중독을 연구하던 대학원생이 만든 음식중독 척도

알코올 중독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 예일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한 애슐리 기어하트Ashley Gearhardt는 2007년 과학 저널에서 과식에 관한 연구를 읽고, 알코올 중독과 음식중독의 과정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어하트는 술이나 약물과는 다른 음식중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음식 섭취에 적용할 수 있는 ‘예일 음식중독 척도 (Yale Food Addiction Scle)’를 개발했다. 예일 음식중독 척도는 지난 1년 동안의 식습관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다음은 기어하트가 말하는 중독을 판단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행동 중 일부다.
 

● 특정 음식을 먹을 때 원래 먹으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

● 특정 음식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냥 먹었다.

● 특정 음식을 너무 자주 또는 너무 많이 먹어서 하고 있던 다른 중요한 일을 그만두었다. 중요한 일이란 직장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일일 수도 있다.

● 너무 많이 먹을까 봐 두려워서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않거나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다.

● 특정 음식을 줄이거나 먹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우울해졌다.


기어하트는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편람에 사용되는 평가체계를 도입
하여 35개의 행동에 대한 질문을 11개의 음식중독 증상으로 정리했다. 

증상을 최소한으로 가진 사람들도 중독으로 간주되며, 그 정도는 경미한 수준(2~3개)부터 극심한 중독 수준(6개 이상)으로 분류된다. 이 척도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 연구한 결과, 문화권이 달라도 음식중독을 감별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어하트는 2017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약 15퍼센트의 사람들이 중독 기준에 해당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게다가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심각한 중독상태였다. 

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본다면 우리는 술이나 특정 종류의 약물에 중독되는 것과 유사한 정도로 음식에 중독된다. 폭식증과 같은 섭식장애까지 포함하면, 음식은 우리가 자제력을 잃게 하는 물질 중 약물과 술 이상으로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혹시 나도 음식중독일까?

고백하자면 음식중독에 관해 기사를 쓰겠다고 결심한 건 오로지 기자의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퇴근 후 매일 저녁 운동을 하는데, 여름이 되니 운동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몹시 목이 말랐다. 

처음엔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에 동네 마트에 ‘아이스크림 10개 5천 원’이라고 써 붙여놓은 걸 봤다. 그때부터였다. 매일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한 것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그 시원함과 달콤함이 나의 목마름을 해갈해주는 것 같았다. 2~3개씩 먹기 시작한 아이스크림은 어느덧 앉은자리에서 10개를 먹게 되었다. 게다가 24시간 문을 여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는 집에서 어찌나 가까운지,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금요일밤이라거나 할인을 많이 한다는 등의 갖가지 이유를 대며 수시로 아이스크림 가게를 들락거렸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반대로 몸에 이상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잦은 배탈, 두통, 여드름, 늘어난 체중, 게다가 퇴근길 내내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만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아이스크림, 초콜릿, 젤리 같이 달달한 간식에 중독된 경우가 많았다. 한 친구는 아내의 잔소리 를 피하려고 이불 속에 숨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노라고 고백했다. 젤리 때문에 충치가 생겨 6개월 내내 매주 치과에 갔다는 이도 있었다. 이웃집 현관 앞에는 아침마다 새벽 배송으로 배달된 각종 제로칼로리 음료 박스들이 놓여 있다.

그래서 실제로 음식중독이 존재하는지 조사를 시작했고, 미국의 탐사보도 기자이자 작가인 마이클 모스Michael Moss의 《음식중독》을 읽고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따뜻한 차 한잔으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사진_게티이미지)


아이스크림 중독, 어떻게 해결했을까?

세계는 비만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21세기 신종 전염병’이라고 규정한다. 

인구 10명 중 4명이 비만인 미국은 대통령 주재 대책위원회를 통해 비만 종합 캠페인 ‘렛츠 무브Let’s Move’를 실행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2007~2008년 19.6퍼센트에 달했던 심각한 아동·청소년 비만 문제에 대응하는 것으로 아동·청소년의 비만율을 2030년 5퍼센트로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군 사령관은 18세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지 못할 정도로 뚱뚱해졌다는 발표를 공개적으로 했고, LA에서는 의사들이 과체중 때문에 제왕절개 수술이 어려워져 산모 사망률이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할 만큼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비만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 원인을 의지 결핍이나 운동 부족 등 개인의 결함으로 돌렸다. 자제하려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충동과 식탐은 육체와 정신을 황폐하게 해 결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의지를 내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음식중독도 알코올이나 약물처럼 중독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신적 문제, 생물학적 문제,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 해결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탄수화물 섭취가 많기 때문에 당지수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음식중독의 위험성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아이스크림 중독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문제의 시작이었던 갈증은 놀랍게도 체온보다 살짝 높은 온도의 차를 한 컵 마시니 사라졌다. 보리차, 메밀차, 보이차 같은 카페인이 적은 차가 좀 더 효과적이었다. 아이스크림의 시원함은 냉동 과일을 갈아 만든 스무디로 대신하고 있다. 

나의 중독상태를 주변에 알리면서 대체할 수 있는 음식들을 추천받은 것이 중독적 식습관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됐다. 내게 맞는 방법을 찾기는 했지만, 스트레스나 예상할 수 없는 문제로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는 생각으로 여전히 조심하고 있다. 


글_전은애  ≪브레인≫수석기자 hspmaker@gmail.com
 

▲ 음식중독의 원인 (사진_게티이미지)

  
  음식중독의 원인

 일정한 시간 동안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것이 폭식장애라면, 음식중독은 특정 음식을 시간과 관계없이 자신이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섭취하는 경우를 말한다. 원인은 유사할 수 있지만, 행동 양상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음식중독의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인을 꼽는다. 

 ▶스트레스 :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피질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증가하는데, 이는 식욕을 억제하는 랩틴의 기능을 떨어뜨려 식욕을 증가시킨다.

 ▶수면장애 : 불규칙한 수면 습관은 폭식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불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며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가공식품 : 단맛을 지닌 음식은 뇌에 신호를 전달하여 도파민이 만들어지고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점점 더 많은 도파민을 원하게 해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된다.

 ▶환경 : 유튜브, SNS, TV 등의 매체에서 음식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접하고, 24시간 편의점을 이용할 수 있으며, 배달앱을 통해 빠른 배송이 가능한 환경이 음식중독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