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의식하지 않는 중에도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작동한다. 더구나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뇌는 탈진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보 과잉의 시대, 지친 뇌를 쉬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는 실력 겨루기
지난 5월, 한강 잠수교에서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올해 6회를 맞은 이 대회는 나날이 인기가 높아져 올해에는 3천 팀 이상이 신청해 4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70팀이 올랐다. 대회 참가자들은 90분 동안 안정된 심박수로 움직이거나 졸지 않는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멍하니 있어야 한다.
대회를 주관한 유쓰양 컴퍼니는 “바쁜 도심 한복판에 멍때리는 집단을 등장시켜 바쁜 사람들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집단의 시각적 대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대회 취지를 밝혔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함으로써 ‘무언가를 하는 것만큼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정보 과잉의 시대, 지친 뇌를 쉬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진_게티이미지)
멍 때리기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뇌의 무게는 체중의 2퍼센트에 지나지 않지만 신체에서 사용하는 산소의 20퍼센트를 소비한다. 이 비율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에 상관없이, 심지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도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뇌는 우리가 휴식을 취하는 중에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처럼 바쁘게 일하는 것이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든 명상을 하든 뇌가 어떤 과제에 임하는 동안 그 작업에 필요한 영역은 활성화하고 일부 영역은 잠잠해지는데, 이 회로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dk, DMN)라 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발견한 미국의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Marcus Richle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는 동안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험 참가자들에게 물어보았다. 실제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온갖 생각과 고민이 가득했다. ‘이거 끝나면 뭐하지’, ‘오늘 점심은 뭘 먹지’, ‘내일 회의가 몇 시더라’ 같은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또 연구 참가자들의 뇌 사진을 분석해보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일 때 네 가지 뇌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내측 전전두피질: 가능성과 개연성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능을 한다.
• 후측 대상회: 기억과 감정을 서로 연결하고 결합하는 일에 관여한다.
• 후측 두정엽: 뇌 영역에서 여러 개의 시각 인상을 하나의 커다란 전체로 결합한다.
• 해마: 시각 기억이 견고하게 합쳐지는 핵심 영역이다.
걱정을 하거나 고민거리가 생기면 디폴드 모드 네트워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뇌는 더 빨리 지친다. 하루 종일 별일을 안 했는데도 피곤함을 느낀다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디폴트 모드의 과도한 활성화를 통제할 수 있는 뇌 구조를 만들지 않는 한 진정한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육체적인 피로와 달리 지쳐 있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뇌를 쉬게 하는 휴식법을 찾아야 한다.
쉬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스마트폰 없이 잠자리에 누우면 어떻게 될까? 고요하고 캄캄한 방에서 시계 초침 소리만 재깍재깍 들릴 때 자연스레 그날 낮에 있었던 일, 내일 해야 할 일 등이 떠오르면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할 것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기란 실상 매우 어려운 일이다. 뇌는 무언가를 계속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릿속이 고요했던 순간이 잠시라도 있었는지.
휴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평생 ‘무엇을 해야 하는’ 환경 속에 살다가 ‘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항상 무언가를 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혼자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힘들어한다.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라디오나 음악 듣기를 못 하게 하면 힘들어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무언가에 몰두할 거리가 없는 텅 빈 상태를 지루해하거나 불안을 느낄 수도 있다.
‘유레카’의 순간은 휴식 다음에 온다
고대 그리스의 왕 히에론 2세는 세공사에게 순금을 주고 신에게 바칠 금관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완성된 금관을 받은 왕은 은이 섞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으나 확인할 방법이 없어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고민에 빠진 아르키메데스는 욕조에 들어갈 때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물질의 밀도에 따라 비중이 다르다는 ‘부력의 원리’를 발견했고, 이를 깨달은 순간 ‘유레카’를 외쳤다.
아르키메데스의 이 유명한 일화는 긴장했을 때보다 이완 상태일 때 더 창의적일 수 있다는 예시로도 자주 활용된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거나 푹 자고 일어났을 때, 또는 자연 속에 있을 때처럼 편안한 휴식 상태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른다는 것이다.
일본 도호쿠대학의 연구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과제에서 실험 참가자들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활성화한 상태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거나 특정 작업의 수행능력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멍때리기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수면과 운동
멍때리기와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은 수면이다. 수면시간이 부족하거나 수 면의 질이 나쁘면 피로가 쌓이고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미국 로체스터대학의 마이켄 네더가르드 연구팀은 충분한 수면이 성인 뇌의 대사산물을 씻어 내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잠자는 쥐의 뇌를 관찰한 결과, 수면 시 뇌척수액의 순환이 더 활발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뇌척수액이 뇌의 노폐물을 처리하기 위해 세포 사이로 스며들어가는 것이다.
뇌의 노폐물에는 치매의 원인으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 뇌 기능에 해를 미치는 여러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다. 이는 수면이 치매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숙면이 치매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의 신경학자인 마이클 그레이셔스는 치매 환자의 경우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활동이 저하되어 있고, 디폴트 모드와 연관된 부위에 베타아밀로이드가 잔뜩 쌓여 있음을 확인했다. 이처럼 충분한 숙면은 뇌 속을 깨끗하게 해 뇌기능을 향상시킨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텅 빈 상태를 만드는 데는 운동도 효과적이다. 등산객 이 정상을 눈앞에 두고 한발 한발 내딛을 때나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달리는 순간에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는 어렵다. 조금 힘든 정도의 운동을 하면 멍때리기와 유사한 현상이 뇌에서 일어난다.
▲ 진정한 멍때리기는 명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_게티이미지)
멍때리기와 명상
진정한 멍때리기는 명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명상의 공통점은 고요한 의식의 단계를 거쳐 고도의 집중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 온전히 의식을 두는 것이 그 시작이다.
2011년 MIT 의과대학 저드슨 브루어 교수 연구팀은 10년 이상 명상 수행을 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명상을 할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 전전두엽과 후방 대상피질의 활동이 감소했는데, 이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활동이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
디폴트 모드는 뇌가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의 60~80퍼센트를 사용한다. 디폴트 모드에서 뇌의 신진대사는 무언가를 집중해 관찰하거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와 비교해 5퍼센트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일 때도 뇌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명상을 하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소비하는 에너지를 줄여 뇌의 피로도를 낮출 수 있다.
뇌도 휴식이 필요해
그동안 뇌과학 분야에서는 뇌 가소성, 회복탄력성 등 어떻게 하면 뇌를 100퍼센트 쓸 수 있는지,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온갖 자극과 범람하는 정보, 매 순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매 순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 멍때리는 시간이라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뇌를 쉬어줘야 좀 더 나은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다. 뇌를 잘 쓰고 싶다면 먼저 뇌가 쉴 수 있게 하자.
글_전은애 《브레인》 수석기자 hspmaker@gmail.com
참고자료
《최고의 휴식》 구가야 아키라, 알에이치코리아, 2017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닐스 비르바우머, 외르크 치틀라우, 메디치미디어,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