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인문학] 신인류와 자연인이 공존하는 세상

브레인 인문학

브레인 96호
2022년 12월 27일 (화)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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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인간이 융합된 ‘신인류’의 출현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KAIST 이광형 총장의 강연을 흥미롭게 보았다. ‘AI 기반 4차 산업혁명: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잠복기에 있던 인간 증강기술이 가져올 변화 앞에서 인문학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강연이었다. 실제로 카이스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문학의 부흥을 위해 올해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를 개설했다.

이광형 총장은 인공지능 기반의 4차 산업혁명으로 기계의 인간화, 인간의 기계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고 하면서 기계와 인간이 융합된 증강인간을 ‘신인류’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인간과 기계가 융합된 신인류로 생체증강인, 인공지능 증강인, 기계인의 세 부류를 제시하면서 21세기는 이들이 ‘자연인’과 공존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기술혁신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힘든 일을 싫어하는 인간의 욕구’와 ‘도구(기술)를 개발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본능’,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이윤을 창출하고자 하는 자본’ 때문이라고 보았다.

교육이란 개인을 완전한 사람으로 개발하는 과정

결국 기술혁신이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 파괴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를 결정하는 근간에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어떠한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그리고 기계와 공존 또는 경쟁하면서 살아가야 할 미래세대에게는 어떤 준비를 시키고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상용화되고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교육계와 기업계에서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 혹은 역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교육의 변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속에는 인본주의적 교육관과 실용주의적 교육관이 혼재되어 있다.

실용주의적 교육관의 경우, 경제적 성장을 위한 인적 자본이라는 관점에서 인간과 기계의 협업이 가져올 효용성 증대를 위해 인간의 고유한 역량을 기르고자 한다. 지식 중심의 교육을 벗어나 가치, 신념, 독립적인 사고, 팀워크,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지식으로는 학습할 수 없는 소프트 스킬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 그것이다.

인본주의적 교육관을 대표하는 기관은 유네스코이다. 유네스코는 이미 1990년대 말부터 기술발전과 지구 환경오염 등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21세기 교육의 변혁 방향에 대해 연구해왔다. 유네스코 21세기 세계교육위원회가 1996년 발간한 <21세기 교육을 위한 새로운 관점과 전망(Learning: the treasure within> 보고서는 이러한 인본주의적 교육으로서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애초부터 본 위원회는 21세기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목적과 기대치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반드시 다뤄야 한다는 필요를 인식해왔다. 학습을 넓게 그리고 확대된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창조적 잠재력을 발견하고 계발하여 확장시키는 일, 곧 각자에게 숨겨진 보물을 드러내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은 기술, 능력, 경제적 잠재력과 같은 특수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도구적 관점을 넘어서서 자신을 완전한 사람으로 개발하는 과정, 곧 존재하기 위한 학습으로 간주돼야 한다.”

인본주의적 심리학을 차용해 ‘홍익인간’을 해석하다

개인의 사상적 자유와 선택의 권리를 최우선 가치로 하는 서구적 교육의 전통에서는 ‘완전한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이 될 것인가, ‘인간개발의 방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는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고 하는 미래 투사적 질문이기도 하기 때문에 인간이 교육을 통해 완성하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담론이 내포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교육기본법은 교육을 통해 완성하고자 하는 인간상을 ‘홍익인간’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념적 논쟁의 장벽에 부딪혀 아직도 교육현장에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동안 홍익인간의 철학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자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정신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에 마땅히 이 시대에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과 실질적인 교육 활동의 준거가 되기에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고대의 기록에서 인용되었다는 점, 그리고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상반된 의견들이 있어왔다.

2015년 《뇌교육 연구》에 발표된 ‘홍익인간 교육이념의 새로운 가치 해석에 대한 연구(저자:김태석, 신혜숙)’의 경우, 이러한 논쟁을 극복하기 위해 인본주의적 심리학을 차용하여 홍익인간의 이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개인의 차원에서 인간이 감각적 욕구 충족을 넘어 정신적, 사회적 자아실현의 욕구로 발전한다는 것을 메슬로우의 인본주의 심리학을 근거로 설명한다. 그리고 피아제와 콜버그 등의 인지발달 이론을 사용해 인간의 의식범위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점진적으로 전체 차원에서 사고하고 그 가치를 추구할 가능성도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실증주의적 과학이론을 근거로 홍익인간 이념의 현실적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그것을 반증하는 과학적 연구가 나오면 타당성을 잃게 되기 때문에 한시적인 설명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삶 속에 살아서 작동하는 문화현상을 체계화해야

한국학이나 한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우리나라 사회문화 속에 내재돼 있는 나와 공동체를 하나로 느끼고 행동하게 하는 문화적 현상들에 놀라움을 표한다. 그렇다면 현시대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서 작동하고 있는 문화적 현상들을 체계화하여 홍익인간 인간관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제시하는 방법은 어떠한가. 역사 사료 부족의 한계를 넘어 홍익인간 이념의 현실성에 대한 좀 더 흔들리지 않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근거를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글_김지인 |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실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지구경영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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