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 과학The Science of Sleep>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샬롯 갱스부르/2006년/프랑스/105분
온갖 상상들이 어린이의 장남감 상자에서 뛰쳐나와 어른들의 상상 놀이터가 되어버리는 이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의 미셀 공드리 감독의 자전적인 환타지 영화다. 영화 속에서 ‘꿈’은 주인공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이고, ‘현실’은 꿈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절반 이상이 꿈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꿈에서 시작, 끝나면서 극장에 불이 켜짐과 함께 아침의 기분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미셀 공드리가 <꿈의 과학>을 통해 보여주는 사랑은 이 ‘꿈’과 ‘과학’ 사이를 탁구공처럼 오간다.
주인공 스테판은 꿈을 통해 기억을 기록한다. 그의 꿈속엔 항상 꿈을 컨트롤하는 또 다른 그가 있다. 그는 작은 TV스튜디오에서 종이로 만들어진 동영상카메라로 자신의 일상과 사랑을 기록한다. 실제로 우리의 뇌는 잠을 자는 동안 하루 일과들을 정리, 기록하니 감독의 이러한 설정은 과히 과학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예술가들은 대 놓고 과학을 자신의 재료로 삼는 걸 즐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사 온 스테파니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스테판. ‘스테파니를 꿈에서 보고 싶어’라는 갈망을 과학 속에서 실천할 방도를 찾는다. 그가 접근한 코드는 REM수면. 깊은 수면에 들어가면 사정없이 돌아가는 눈동자를 이용해 그는 자신의 꿈을 추측하고자 한다. 그렇게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던 그의 발상들은 꿈과 현실의 극한 혼돈을 가져온다. 연속된 결근으로 해고될 위기에 놓여서도 과도한 업무로 피곤하다는 스테판. 그의 꿈과 현실의 혼돈은 사랑하는 스테파니의 뇌와 자신의 뇌가 연결되어 있다는 행복한 착각마저 갖게 한다.
착각의 기차가 뿜어내는 비과학적인 발상의 배설물은 사랑스럽고 위험스럽다. 사랑은 그 위험을 즐기고 그 발상을 공유하도록 유도한다. 펠트천 조각배 안에 숲을 만들고, 그 숲의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 셀로판지 바다로 밀려가는 배에 동행하는 희망을 갖게 한다. “70살이 되면 결혼해 주겠어?”라는 스테판의 사랑의 언어와, 색색의 셀로판지가 든 상자를 가져온 그에게 “바다다!”소리치며 키스해주던 스테파니의 사랑의 언어는 ‘흥미로운 뇌의 반응’으로 해피앤딩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들이 현실의 이별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을 갈망했던 것처럼 삶은 항상 가장 행복한 꿈을 바라는 상상이 아닐까.
글| 최유리 yuri2u@brai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