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의 다양한 이슈를 ‘뇌’의 관점에서 풀어보는 브레인셀럽.
인간관계를 치열하게 탐구하는 상담학자이자 상담 전문가인 이헌주 박사를 초대해 관계 맺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헌주 박사는 연세대학교 미래융합연구원 인공감성지능융합연구센터 연구교수이고, 지난해에 《무례한 사람을 다루는 법》을 출간했습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받아내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않으려면
인간이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일, 돈, 건강, 인간관계. 이 네 가지 요소 중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로 꼽히는 것은 인간관계입니다.
여러분은 우울한 하소연을 누군가에게 자꾸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그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주로 받아주는 편인가요? 만약 주변 사람들의 우울한 하소연 때문에 덩달아 우울해지고 마치 자신이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다면 그 원인이 자기 안에 숨겨져 있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타인의 우울감을 아주 잘 수용해 주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감정은 공명합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불안한 감정을 공유하고, 긍정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만나면 활기를 공유하죠. 주변 사람이 자신에게 우울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 자기 안의 우울감이 공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보세요.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낼 때도 감정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 들죠. 어떤 분은 자신에게 화를 잘 내는 사람에 대해 ‘원래 분노 조절 장애라서 그렇다’라고 합니다. 정신의 병증이 아닌 이상 분노조절장애라는 건 세상에 없습니다. 다 사람 봐가면서 하는 거예요. 한번 예를 들어볼까요?
운전하고 가다가 옆 차선에서 깜빡이도 안 넣고 차가 확 들어오면 순간 경적을 빵빵 울리죠. 그런데 그 차가 멈춰 서고, 나도 화가 나서 내립니다. 급기야 앞차에서도 운전자가 내리는데 덩치가 나보다 한참 크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돌아서서 내 차로 얼른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분노조절장애가 ‘분노조절잘해’로 바뀌는 순간이에요.
사람은 상대를 봐가면서 화냅니다. 아무한테나 화내지 않아요. 이유 없이 내게 자신의 분노을 쏟아내는 이가 있다면 내가 그렇게 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세요. 그리고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이것은 공격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입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특징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착한 아이로 기능해야 한다는 압박감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고, 손해가 되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외면하고 있는데 그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손을 듭니다. 내면에서 ‘야, 이 어색한 분위기 어쩔 거야. 그냥 너가 빨리 해’하는 메아리가 계속 울리는 거죠.
둘째는 비난입니다.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메아리에 귀를 막고 압박감을 견디고 있는데,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너 지금 안 나서면 진짜 이기적인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널 싫어할 걸?’ 이 협박조의 메아리는 더 외면하기가 힘듭니다.
셋째는 관계성입니다. 이 세 번째 요소가 더해짐으로써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완성됩니다. 관계성은 곧 높은 공감력을 가진 친화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관계성이 강하면 부모의 지시나 칭찬에 잘 포섭됩니다. 그런데 관계성이 별로 없는 사람은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 하면서 저항할 수 있어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
압박감, 비난, 관계성은 우리를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히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이 요소들의 작동을 멈추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바꾸는 건 쉽지 않지만 연습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괜찮지 않음에도 늘상 괜찮다고 해왔다면 이제부터는 괜찮지 않다는 의사 표현을 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제가 지금은 조금 어려워서요”라는 식이죠.
처음부터 “아니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건 잘못된 얘기잖아요. 이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라는 게 아닙니다. 작은 것부터 거절하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누가 밥 먹자고 하는데 그럴 마음이 들지 않으면 “오늘은 안 되고, 다음 주에는 가능합니다”할 수 있겠죠. 이것은 상대에게 거절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이렇게 연습하면서 빈도를 높여 나가 보세요.
이런 인간 유형과 엮이지 마세요
인간은 대체로 선한 면을 드러내지만 유독 악한 면이 도드라지는 인간 유형이 있습니다. 어떤 유형이 어떤 치명적 특성을 보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날 힘들게 하는 ‘얼음형’
얼음형이라고 해서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관계의 효과가 매우 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상담하러 온 한 여성이 자기 남편이 소시오패스라는데, 나중에 남편을 보니 소시오패스가 아닌 거예요. 검사를 해도 소시오패스하고는 관계가 없고. 아내가 남편에게 많은 에너지를 쏟아도 돌아오는 게 너무 없는 게 문제였어요. 관계도 거래의 작용인데, 남편은 관계의 욕구가 매우 적은 사람이었던 거죠. 그럼 애초에 그런 사람에게 왜 끌린 걸까요?
열 명의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나한테 호의적인데 유독 한 사람만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그 사람이 자꾸 신경 쓰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은 뭘 좋아할까 관심을 갖다가 엮이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얼음형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아 중심성이 굉장히 큽니다. 모든 게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죠. 둘째는 관계의 욕구가 굉장히 떨어집니다. 다른 사람하고 밥을 안 먹는 건 상대가 싫어서가 아니라 혼자 먹는 게 좋아서입니다. 셋째는 사람이 차갑습니다. 카톡할 때도 이모티콘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 날 힘들게 하는 ‘나르시스트형’
자기애가 강한 나르시스트도 자아 중심성이 강하지만 얼음형과는 다릅니다. 얼음형은 자신의 공간과 시간이 중심이고, 나르시스트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중심에 있고자 합니다.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어서 관심과 인정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 것이죠.
나르시스트는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면서도 주변부로 밀쳐냅니다. 나는 항상 사랑받아야 하고 너는 안 된다는 거예요. 착취적이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새 가방으로 관심을 끌면 자기 물건을 내보이며 화제를 자신에게로 돌립니다. 가방의 주인공은 처음에는 눈치를 못 채다가 뭔가 약간 기분이 나빠지죠. 이게 정서적 착취예요.
사실 나르시스트가 가장 위험한 이유는 보기에 좋아 보인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항상 무대 위에 있습니다. 화려하고 뭔가 좋은 게 있을 것 같죠. 다른 사람도 무대에 올려줄 것처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심리적으로 나르시스트에게 묶이게 되는 지점이에요.
이 사람은 항상 독무대를 차지합니다. 조명은 자신만 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피켓 들고 응원만 해야 합니다. 피켓 든 사람들 팔이 얼마나 아플까 같은 생각은 절대 안 합니다. 오히려 피켓이 왜 이렇게 작냐, 더 높이 들어라 하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나 지지, 연민 등의 심리적 자원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사람과 바로 손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되도록 거리를 두세요. 일단 말로는 인정해 주고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차츰 줄여나가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 날 힘들게 하는 ‘소시오패스형’
소시오패스 역시 자아 중심성이 강하고, 공감 능력이 매우 적습니다. 나르시스트처럼 착취적이나 차이점은 실제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르시스트보다 소시오패스가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어요. 소시오패스는 다른 사람의 돈이나 시간, 역할, 역량 같은 것을 너무 잘 착취하기 때문에 걸려들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소시오패스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어요. 사회생활을 잘하는 경우가 많아서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죠. 크게 성공한 사람 중에도 많이 있어요. 소시오패스가 노리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착하고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 착해서 자기 할 말을 다 못하고, 부탁한 일을 성실하게 해주고, 빼먹기 좋은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죠.
그런데 소시오패스는 충동성이 강해서 이 점을 역으로 이용하면 관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충동성이 강하다는 것은 인내심이 별로 없다는 것이므로, 요구에 대한 응답을 미루면서 기대한 바를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공략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날 힘들게 하는 ‘집착형’
집착형은 어떻게 보면 경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꾸 뭘 도와달라고 하고, 경계 없이 다른 사람의 삶에 파고 들어갑니다. 불안을 쏟아내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황폐화하기도 하죠.
물에 빠져서 도와달라고 손을 뻗는데, 그 사람을 구하려고 손을 잡으면 오히려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상대방이 변화하려고 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하고, 직장에 잘 다니는 연인을 갖은 방법을 써서 관두게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불안을 시도 때도 없이 카톡으로 쏟아내며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일상을 어지럽힙니다.
집착형인 사람과 관계를 완전히 끊기 어렵다면 먼저 경계를 세우세요.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자야 하는 시간이야. 내가 네 인생 문제를 결정해 줄 수는 없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 상대가 원망하면 당분간 전화나 문자에 응답하지 마세요. 관계를 단절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융합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자세
눈치 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자기 생각을 너무 강하게 얘기하기보다 자신의 욕구를 적절하게 펼쳐나가는 것이 건강한 관계 맺기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자기 생각만 하며 무례를 범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 상대의 욕구를 모르는 사람에게 대처하기
상대의 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타자에 대한 조망 수용 능력이라는 게 생깁니다. 그런데 이게 좀 부족하면 상대의 욕구를 잘 파악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족발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늘 족발을 권하는 식이죠. 만약 회사에서 부장이 족발집에서 회식을 하자고 하면 “족발 안 좋아하는데요” 하기보다는 “사실은 저 족발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부장님이 가자고 하시니까 이번엔 그냥 가죠”라고 말하는 편을 권합니다.
상대의 욕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내 욕구를 명확하고 부드럽게 밝힘으로써 다른 사람의 욕구를 살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줄 수 있습니다.
• 집착하는 사람에게 대처하기
관계라고 하는 것은 너무 멀어도 잘 보이지 않고, 너무 가까워도 보이지 않습니다. 내담자 중에서 아주 가까웠던 사람과 손절했다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한 주 있다가 다시 만나보면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너무 밀착된 거리는 오히려 단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 너무 단절해버리면 다시 밀착될 수 있고요.
관계에서도 극단적인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관계에는 반드시 거리가 조금 필요합니다. 관계는 항상 거리를 두고 그 안에서 교집합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너무 가까운 사람에게는 애증이 따릅니다. 기대를 많이 하기 때문에 서운함의 폭도 깊어지는 것이죠. 관계를 지키기 위해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 예민한 사람에게 대처하기
빅 파이브라고 하는 성격 검사에는 5가지 변인이 있습니다. 그중에 신경증이라는 게 있는데, 신경증은 불안과 우울이 조금 높은 경우입니다. 예민한 거예요. 또 한 가지 변인인 친화성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까칠한 성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경증이 높고 친화성이 떨어지면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인 것이죠. 그 사람의 성격 자체가 그런 것이니 굳이 관계에서 척을 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신경증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안전 요소가 됩니다. 조직에서 위험한 시도를 하려고 할 때 돌다리를 두드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으면 내가 선을 넘으려 할 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자주 화내는 사람에게 대처하기
‘내가 화났어’ ‘내가 불안해요’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에게 ‘왜 그런 거 갖고 화를 내니’ ‘뭘 그런 일로 걱정을 해’라고 하면 대화가 안 됩니다. 대화는 상대가 옳다는 토대에서만 가능합니다. 바람이 불면 옷깃을 더 여미게 되죠. 옷깃을 풀게 하는 건 환대입니다. 당신이 옳다는 토대가 관계를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단은 그 사람이 지금 화났다고 하니까 먼저 들어볼 수 있잖아요. “화가 났구나”라고 말해주면 자신이 화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할 겁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람의 감정을 인정해 주면 그때부터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 의존적인 사람에게 대처하기
그루밍과 훈육의 차이가 뭐냐고 묻는 분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홀로 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루밍이고, 스스로 서게 하는 것이 훈육입니다. 의존적인 유형의 사람과 가까운 관계이고 그를 위한다면 ‘내가 네 인생의 문제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고 유연하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입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열 명의 사람 중 한두 사람과만 친하고 나머지는 날 싫어해도 된다고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두세 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나머지 한 서너 명하고도 괜찮은 관계일 수 있죠. 그 외 사람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미움을 살 필요는 없겠죠. 인간관계에는 무엇보다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유연하게 대처해야 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정리_브레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