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토닌, 뇌를 보호하는 암흑의 호르몬

[뇌과학 스터디] 꿀잠을 위한 호르몬 시리즈 1

브레인 75호
2019년 06월 05일 (수)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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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스터디] 꿀잠을 위한 호르몬 시리즈 1

현대인들의 건강 기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수면’이다. 인류가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연스러운 ‘빛’에 따른 일상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문명에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구는 언제부터인가 불이 꺼지지 않는 별로 변해가고 있다. 이번 호 ‘뇌과학 스터디’는 인체의 다양한 호르몬 중 특히 수면에 관련된 호르몬을 선정해 알아본다.

. 멜라토닌, 뇌를 보호하는 암흑의 호르몬
. 세로토닌, 긍정적 마음의 호르몬
. 코르티솔, 스트레스의 외야수비수

밤을 지배하는 암흑의 호르몬

새벽부터 저녁까지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낮 동안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호르몬이다. 야외에서 볕을 쬐면 기분이 좋아지고, 해가 짧은 겨울이면 기분이 우울할 때가 많은 것도 세로토닌이 빛이 있을수록 더욱 활발하게 분비되기 때문이다. 바로 송과선pineal gland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melatonin이라는 호르몬이다.

멜라토닌은 빛, 특히 푸른 파장의 빛이라면 질색을 한다. 깜깜한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 30분 정도까지 분비되는 올빼미 기질 덕분에 멜라토닌은 ‘암흑의 호르몬’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호르몬은 밤과 낮처럼 정반대로 보이겠지만 사실 멜라토닌은 세로토닌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을 거쳐 멜라토닌으로 바뀌는 것이다.

두 호르몬의 변신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것은 뇌 한가운데 깊숙한 곳에서 소리 없이 하루의 시간을 알리는 생체 시계의 중심, 시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 SCN)이다. 이곳에서 빛이 사라졌다는 정보가 송과선에 전달되면 멜라토닌이 분비되어 잠이 오게 된다.

주야간 교대근무처럼 불규칙한 생활을 하거나 장거리 비행을 하면 멜라토닌의 분비가 정상적이지 못해 수면장애, 우울증, 시차적응 실패와 같은 문제가 생긴다. 심지어 암 발생률이 더 높아진다는 의견도 있다. 밤에 불을 켜고 자면 개운치 않은 것도 빛이 있으면 멜라토닌의 분비가 방해받기 때문이다.

뇌와 몸을 보호하는 재주 많은 호르몬

멜라토닌을 단순히 잠만 재우는 호르몬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멜라토닌은 뇌와 몸을 보호하는 고마운 물질이기도 하다. 세포 활동의 결과로 유해산소를 비롯한 자유 라디컬(free radical)이 생기는데 이것이 조직손상과 염증, 노화의 원인이 된다. 요즘 몸에 좋다고 하는 항산화물질들이 인기가 높은 이유도 자유 라디컬을 제거하는 기능 때문이다.

멜라토닌은 그 중에서도 최상이다. 다른 항산화물질들과는 달리 한번 자유 라디컬을 붙잡으면 분리시키지 않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멜라토닌은 뇌와 혈관, 세포 사이를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춰 적은 양으로도 뇌의 신경들을 보호하고 심장을 비롯한 몸 전체에서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멜라토닌은 암을 예방하는 역할과도 관련이 깊다. 유방암, 전립선암을 예방하고 면역계를 강화한다. 실험쥐의 수명을 최대 20퍼센트나 연장한 결과도 있고, 폐경기 여성의 경우 멜라토닌의 농도가 높아지자 생리가 다시 시작됐다는 연구도 있다. 이 때문에 생명 연장의 꿈이 멜라토닌에 달려 있다고 하는 학자들도 많다.

밤 사이 벼락치기 공부는 헛수고

밤 시간에 담배를 덜 피우게 되는 것도, 천식환자가 기침이 심해지는 것도 멜라토닌의 영향이다. 시간에 따른 몸의 변화에서 멜라토닌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뇌의 기능은 낮과 밤에 극명하게 바뀐다. 보통 낮 동안의 기억은 밤에 장기기억으로 바뀌지만 밤에 학습한 내용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멜라토닌이 새로운 기억이 생기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밤에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면 능률도 떨어지고 오래 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밤 사이 공부나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멜라토닌의 긍정적인 효과는 그대로 두면서 멜라토닌 수용체를 적절히 제어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멜라토닌은 기억뿐 아니라 인지과정 전반에서 없어서는 안 될 호르몬이다. 멜라토닌은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신경섬유원 농축현상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치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우울증과 불면증, 늦은 오후나 밤에 더욱 혼란스러워지거나 흥분하게 되는 증상들을 멜라토닌이 완화시킨다고 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경우 수면장애뿐 아니라 전반적인 증상을 나아지게도 만든다. 또 자폐증을 가진 아동이나 부모들의 멜라토닌 수치도 일반인들보다 낮다는 보고가 있어 새로운 연구주제가 되고 있다.

리듬을 잘 타는 것이 뇌건강의 비결

멜라토닌은 주로 알약의 형태로 만들어져 생체 시계의 교란으로 인한 불면증을 치료하는 데 쓰이고 있다. 시차 적응을 위해 비행기 여행을 시작할 때 먹기도 한다. 우울증, 특히 생체 시계와 관련이 깊은 계절성 우울증(seasonal affective disorder) 치료에도 쓰인다.

그러나 복용량과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 중이다. 세계적으로 보조식품이나 의사의 처방에 따른 제한적 치료용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효과를 긍정하는 학자들도 현재 판매되고 있는 멜라토닌 보조제는 함량이 높아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경고한다.

충분한 멜라토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과 식생활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콩, 견과류, 우유, 치즈, 닭 가슴살, 칠면조, 쇠고기, 자두, 바나나 같은 음식들은 멜라토닌과 세로토닌의 원료가 되어 숙면을 도울 뿐 아니라 개운한 아침과 활기찬 낮을 가져다준다.

암과 노화를 예방하는 효능도 기대할 수 있다. 저녁부터는 필요 없는 조명을 피하고 반대로 아침부터 낮 동안은 충분히 햇볕을 쬐는 것이 좋다. 푸른빛을 차단하는 안경이나 휴대용 조명기기를 굳이 사지 않아도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적절히 먹고 멜라토닌의 리듬에 잘 맞추어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뇌와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부터 멜라토닌과 함께 생명연장, 뇌건강의 리듬을 타보자.

글. 브레인 편집부 | 자료제공 = 한국뇌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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