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다’
호르몬, 인간의 오묘한 감정을 표현하다
호르몬은 인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자, 특히 감정(emotion) 기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이번호 뇌과학 탐험은 대표적인 호르몬 이야기를 통해 뇌교육의 감정관리 원리인 ‘내 감정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다’에 관한 뇌과학적 배경을 이해한다.
<4> 아드레날린/노르아드레날린, 분노와 용기의 호르몬
요즘 아이들을 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폭력적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폭력 이미지들은 영상이나 사진을 만들고 보는 아이 모두를 염려하게 만든다. 폭력의 쾌감에 익숙해져가는 아이들의 예상치를 넘는 스트레스는 현대인이 함께 겪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일상을 전쟁터로 만드는 현대의 구조 속에 나와 내 가족을 지켜내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는 공포와 분노로 휩싸인 아프리카의 어린 반군 소년이 나온다. 이 소년은 다른 소년들과 함께 반군에게 부모와 집을 빼앗기고 끌려가 세뇌당하며 반군으로 키워진다. 소년은 양심의 가책 없이 마을들을 공격하고 거리낌 없이 양민을 학살한다. 이후 아버지와 다시 마주하게 된 소년은 아버지에게 거침없이 총을 겨눈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아프리카와 중동의 어린 소년들이 총을 메고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소년병들의 경계하는 눈빛은 살기를 띤 채 무섭게 카메라를 향한다. 이념도 세계의 흐름도 잘 모를 그 아이들의 눈엔 공포 뒤의 분노만 들어 있다. 분출되지 못하는 아이들의 감정 내부엔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있다.
# 생존을 돕는 호르몬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 두 호르몬은 신장 위 부신에서 만들어진다. 화학적으로만 약간 다를 뿐 약리작용도 교감신경 자극효과도 비슷하다. 이 호르몬들은 스트레스 에너지를 통해 뇌가 자신의 네트워크를 최적의 상태로 확장시키게 한다.
즉 인간이 최대의 수행능력을 갖고 생존하도록 돕는 것이다. 때문에 위험에 처했을 때 인간은 평소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시적인 ‘슈퍼맨’ 상태, 혹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들어맞는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기지를 발휘한 수많은 무용담과 신화는 인간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음을 알려준다.
극복 가능한 일시적 스트레스 상황은 위와 같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멋진 추억을 남겨줄 수 있지만, 극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는 극한 스트레스는 앞의 소년병들에서처럼 공격적·폭력적 성격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저하시켜 질병에까지 노출되게 만든다.
# 독을 지닌 호르몬
두 호르몬의 평소 분비량은 하루의 활력을 주는 정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분비되기 시작해서 열심히 일하는 낮에 왕성해지고 밤이 되면 우리와 함께 잠이 든다. 때문에 이들을 두고 ‘생명리듬의 근원’이라고도 한다. 물론 이 두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었을 때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생명의 신비 호르몬》의 저자 데무라 히로시의 말에 따르면 두 호르몬의 독성은 자연계에서 복어와 뱀의 독 다음으로 강력하다고 한다. 나 자신의 몸에 그런 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이 독성이 몸에 영향을 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격렬하게 화를 낸 후에 오는 두통, 심장의 두근거림, 식은땀, 호흡곤란은 물론, 두려움이 극한에 다다르면 현실감이 없어져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질식감과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 성취중독 호르몬
사건과 환경이 두 호르몬의 분비를 자극시키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두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키기도 한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번지점프를 하며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 돈을 내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생존의 성취감을 주고 스릴을 주며 뇌에 쾌락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인들은 자신을 극한의 상태까지 몰고 가 성취를 이루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회가 권하는 성공의 방정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취 지향적인 사람들은 이 두 호르몬의 중독에 걸리기 쉽다. 사람들의 칭찬과 사회적인 성공이 있는데 어떻게 중독에 걸리지 않겠는가.
문제가 제기되는 때는 그 칭찬의 중독이 계속될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이다. 무대 위에서 내려온 스타, 명예퇴직 후 집을 지키는 아버지, 사회적 과제를 완수한 후 심리적 공백기에 놓인 사회인의 우울증이 바로 그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며, 무언가 시작할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극한 경우엔 상실감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 이후에 대해서는 숙고하지 않는다. 간혹 인생 최고의 순간은 바닥을 향한 추를 달고 오기도 한다. 때문에 성공을 향한 속도를 줄이고 속도 자극을 피하며, 정기적으로 휴식을 취해 두 호르몬의 중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다.
두 호르몬은 ‘분노’의 호르몬이 될 수도, ‘용기’의 호르몬이 될 수도 있다.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도한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다. 당신은 어떠한가?
두 호르몬을 조절해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있는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일수록 우리에겐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여유를 잃지 않고, 조그만 일에도 감사하고,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내 삶의 파괴자가 될 것인가, 영웅이 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글. 브레인 편집부 | 일러스트=이부영 | 자료제공= 한국뇌과학연구원 www.kib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