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다’
호르몬, 인간의 오묘한 감정을 표현하다
호르몬은 인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자, 특히 감정(emotion) 기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이번호 뇌과학 탐험은 대표적인 호르몬 이야기를 통해 뇌교육의 감정관리 원리인 ‘내 감정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다’에 관한 뇌과학적 배경을 이해한다.
<2> 테스토스테론, 남성호르몬 1번 레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호르몬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비된다면 세상은 지루한 사막과도 같을 것이다.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이라는 개성을 만들어내는 성호르몬, 그중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남성스러움의 대표 호르몬이다. 여자와 남자를 떠나 자신이 남성스럽다고 느낀다면 성性이란 단어를 괜스레 민망하게 느끼지 말고 테스토스테론에 눈길을 주자.
# 그대가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테스토스테론
“오늘 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은 무엇이든 세 가지로 구성되죠. 나 너 우리, 삶 죽음 초월, 정 반 합, 하늘 땅 사람, 남성 여성 인간…. 호르몬이 하는 일도 결국엔 남성과 여성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겠죠.” 요즘 어느 광고 문구를 빌려 표현하자면 호르몬도 이렇게 나눠지지 않을까.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남성답다’라는 말에서 풍기는 거의 모든 성격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테스토스테론은 많은 사람에게 ‘남성호르몬’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호르몬은 여성에게도 적은 양이긴 하지만 중요한 호르몬으로 존재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뇌하수체의 황체자극호르몬inter-stitial cell stimulating hormone에 의해 조절되며 주로 남성의 정소에서 분비된다. 콜레스테롤이 원료인 스테로이드 계열의 이 호르몬은 대부분 성호르몬 결합 단백질인 알부민 등과 결합한다. 혈액을 통해 뇌로 이동한 호르몬은 성적 신호에 대한 반응에 관여한다. 한편 성호르몬 결합 단백질과 연결되지 않은 호르몬은 근육 형성 등 신체에 영향을 주어 남성의 성향을 강하게 한다.
# 낯선 청년에게서 그 소년의 향기가…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2개월까지는 모두 여자아이로 존재한다. 10주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성호르몬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후 성적으로 발육이 이뤄지면서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 비해 다량의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한다. 이 시기의 테스토스테론 분비는 남자아이의 우뇌 성장을 뚜렷하게 한다. 우뇌는 공간을 인지하는 중추가 존재하는 곳으로, 대개 남자가 방향이나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엄마의 뱃속에서 남성으로 성 정체성이 결정됨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것을 각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테스토스테론은 2차 성징의 신체 변화를 통해 한 번 더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뽀얀 솜털과 맑은 목소리의 아이는 어느새 음성이 굵어지고 체모가 많아지며 근육이 발달하면서 건장한 청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후 20대 중반 정도에 최고조에 이르는 테스토스테론은 40~50세 정도부터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한다. 갱년기에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감소하는 여성과는 달리, 남성의 테스토스테론은 적정량을 유지하며 서서히 감소한다.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는 그 요인이 외부에서 오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때 우리 몸엔 코르티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코르티솔은 면역력을 저하시키는 한편 테스토스테론을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와는 반대로 뇌가 행복한 기분이 들 때, 대뇌피질은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자극한다고 한다. 또한 비만으로 인해 지방조직이 증가할 경우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낮아진다.
하지만 꾸준한 운동을 통한 체중 조절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일 수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고개 숙인 자신이 황금 벌판처럼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꾸준한 운동을 통해 아름다운 성을 가꿔보자. 단, 과도한 테스토스테론은 활성 남성호르몬인 DHT(dihydrotestosterone)로 바뀌게 되므로 경계할 것. DHT는 전립선을 비대화시키며, 머리카락의 성장 기간을 단축시켜 대머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차이 속에서 인간다움을 발견
외국의 어느 영화에서처럼 남자가 만삭이 되어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만 남편은 아내의 임신을 준비하고 함께 체험한다. 아내의 임신 기간 동안 남편은 알 수 없이 감정 기복이 심해지거나 구토, 체중 증가, 심지어 배가 불러오기까지 한다. 이러한 남성의 임신 증상을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이라고 한다.
이 쿠바드 증후군은 뇌가 먼저 예비 아버지의 상황을 인지하고 준비하는 과정으로, 신체 변화를 일으킨다. 바로 호르몬 변화가 쿠바드 증후군, 즉 유사 임신 증상의 직접적인 원인. 예비 아버지로서의 보호 본능을 강하게 하기 위해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올라가며, 임신한 아내의 장기간 스트레스 상태에 호응하기 위해 코르티솔이 증가된다.
많은 개성과 차이 속에서도 우리는 굳이 ‘남성스럽다 여성스럽다’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사람의 차이를 구분하려 하는 오래된 고집을 가지고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여성의 난소와 부신피질에서도 분비되어 여성의 성적 욕구 및 근력과 골밀도를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지 분비되는 양에 있어서 남녀의 차이가 날 뿐이다. 인간의 육체적 건강, 욕망, 마음에 있어 많은 부분을 지배하는 막강 화학물질, 테스토스테론. 이 힘찬 호르몬을 통해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을 관통하는 인간스러움을 섭렵해보는 게 어떨는지.
글. 브레인 편집부 | 자료제공= 한국뇌과학연구원 www.kib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