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으로 보는 감정

Body&Brain

브레인 39호
2013년 05월 23일 (목)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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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처음 보는 타인에게 총기를 난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기도 하는 모순은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학교 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청소년들의 ‘감정 조절’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이다. 최근 10여 년간 뇌과학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밝혀진 감정의 실체를 살펴보자.

뇌과학이 밝혀낸 뇌 속 감정회로

뇌과학에서는 감정을 포유류의 뇌에서 변연계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즐겁거나 불유쾌한 마음의 상태라고 말한다. 파충류는 후각을 중심으로 본능적으로 행동하지만 포유류는 파충류보다 발달한 변연계와 대뇌피질로 인해 복잡한 반응이 가능하다. 진화의 초기에는 냄새가 먹이를 찾고 적을 감지하며 짝짓기에 중요했기 때문에 후각과 연결된 변연계에서 발달한 감정의 느낌 역시 냄새를 맡는 방식과 비슷하게 발달했다.

공포, 분노, 슬픔 그리고 기쁨 같은 기본 감정은 정도와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포유류가 진화하면서 공통적으로 가지게 된 감정들이다. 예를 들면 사랑은 자식을 먹이고 보살피기 위한 뇌의 회로가 진화되면서 갖게 된 감정이다.

따라서 1차적인 감정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고, 살아남는데 꼭 필요한 뇌의 정보처리 방식이다. 제아무리 고립된 오지의 사람을 만나도 우리는 웃는 것으로 인사를 할 수 있다. 웃음이 인간 공통의 감정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 인간은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배우지 않아도 미소를 지을 수 있고 3개월 내에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다. 아기가 따라 웃는 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매우 중대한 연결 고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뇌의 구조와 연결해서 본다면 1차적 감정은 변연계, 특히 편도와 앞쪽 대상이랑anterior cingulate gyrus의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2차적 감정은 학습을 통해 사물, 사건, 상황에 연결되는 감정들이다. 치과의 집게만 봐도 겁이 난다든가 하는 사고 처리가 필요한 복잡한 감정의 경우가 2차적 감정들이다. 사물과 사건을 파악하고 이전의 기억을 분석하는 발달된 대뇌피질 덕분에 인간의 감정은 더욱 복잡하면서도 고도로 발달해왔다.

감정이 없으면 이성도 없다?

이러한 정의와 진화과정을 살펴볼 때 과연 감정은 이성의 반대일까?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연구를 보면 감정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의 연구를 보면 성공한 비즈니스맨이던 한 환자는 전전두엽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거친 후 완전히 달라졌다. 직장에서의 작업수행 능력이 떨어지고 돈과 일에 대한 판단도 계속적으로 나빠졌다. 또한 가정에서도 관계가 악화되어 결국 가정 파탄을 맞았다.

비슷한 몇몇 연구에서도 인간의 수행 능력은 변연계를 중심으로 한 감정회로와 비교하고 판단하는 전두엽의 협력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마치 로봇처럼 감정이 없이 이성의 지배만 받는 사람은 정작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적인 것과도 거리가 멀고 제대로 된 판단조차 할 수 없다.

또한 기억에서도 감정은 빼놓을 수 없다. 우리가 제아무리 어떤 인상적인 사실을 접하더라도 영혼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적 사건이 없다면 그것은 곧 잊혀져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다. 즐거운 일일수록 기억을 더 잘하게 되는 것은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와 편도가 서로 연결되어 우리의 기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외부의 위협에 대해 제대로 반응하기 위한 감정인 공포와 분노 같은 감정은 시냅스의 생성과 해체에도 영향을 줘서 기억력도 떨어뜨린다. 정서가 안정될수록 두뇌의 발달과 학습이 잘 이루어진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보아도 감정은 이성의 반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나의 감정 왜 쉽게 알지 못할까?

그런데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왜일까? 간혹 자신이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보이는 까닭은 감정처리 회로와 논리처리 회로가 상호작용도 하지만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뱀을 봤다고 가정해보자. 시각자극은 시상을 통해 대부분 대뇌의 시각피질로 전달된다. 그러나 짧고 빠른 경로를 통해 일부 시각자극이 편도에 전해진다.

시각피질에서 물체를 파악한 후 해마에서 기억을 저장하고 출력해 이전의 사건기억들과 맞춰 판단하기도 전에 이미 편도에서는 감정반응이 시작된다. 물론 반대로 기억과 사물에 대한 판단이 역으로 감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분노의 감정은 대부분 상황과 사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판단하면 일어난다. 따라서 감정반응은 빠른 편도 쪽 경로와 느린 피질 쪽 경로의 정보가 서로 경쟁하고 합쳐진 결과다.

편도의 자극은 호르몬 분비와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영역들로 이어져 혈압은 올라가고 심장은 더 빨리 뛴다. 무서울 때나 이성에게 흥분할 때나 기본적인 신체적 반응은 동일하다. 흥분으로 분비된 호르몬은 신경자극과 더불어 뇌의 회로에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집중력을 올리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더 잘 싸우거나 도망칠 수 있고, 연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감정은 뇌와 신체의 생리적 변화를 가져온다.

감정이 얼굴 표정과 호흡, 맥박 같은 신체적 반응들로 표현되는 것처럼 반대로 몸의 상태 또한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조금만 잠이 모자라거나 배가 고파도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감정 반응들이 일어난다.

감정이 몸의 변화를 일으키고, 심하게는 병이 생겨 몸이 다시 감정을 지배하는 복잡한 상황이 이어진다. 뇌과학적인 연구 결과와 더불어 기존에 내려오는 동양적인 심신일여心身一如 사상이 다시 주목받는 것도 이러한 감정과 논리, 몸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감정 조절의 시작은 몸

고대 그리스인들은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Nous hugines ev somati huginei’는 보편적 가치 아래 각종 대회를 열어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기술을 익히며 육체의 향연을 만끽했다. 우리 선조들 역시 심신쌍수心身雙修의 생활습관과 문무를 고루 갖춘 인재양성을 중시했음을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없이 편리해진 기기가 현대인들로 하여금 육체의 움직임을 감소시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에게서는 우울증을 찾아보기 힘들고, 몸과 마음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누구나 알지만 어느새 우리들은 ‘감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우리 몸의 존재를 잊고 살아간다. 나의 몸을 바르게 하는 것, 그것이 감정 조절의 기본이다.

감정은 뇌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정보다. 예를 들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뇌가 그러한 상태가 되면서 관련 호르몬을 분비하며 ‘내’가 ‘우울하다’는 느낌을 갖는데, 그 배경에는 우울함을 유발시킨 기억정보가 자리한다. 사실상 ‘내가 우울하다’기보다 우울함을 일으킨 정보가 나의 뇌에 존재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우울한 상태를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뇌의 상태를 바꾸는 확실하고도 기본적인 것이 바로 몸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인체 곳곳에 뻗어 있는 수많은 신경계는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몸에 변화를 주면 뇌가 금세 반응하게 되어 있다. 과거에는 운동하면 몸이 좋아진다는 표현을 썼으나, 이제는 뇌가 발달된다고 표현한다.

하버드 대학 정신과 의사 존 레이티John J. Ratey 교수는 “운동은 집중력과 침착성은 높이고 충동성은 낮춰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과 ‘리탈린’을 복용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감정이란 마음의 작용이고, 마음은 우리 인체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몸이 아파 병원에 한동안 있게 되면 누구나 감정이 요동을 친다. 괜스레 신경질을 내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마음은 위축된다. 평소에 하지 않던 이런저런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몸이 병들면 마음도 약해지는 건 당연한 인체의 유기적 시스템이다. 그 작용 속에 온갖 감정이 일어나는 것 역시 지극히 자연스럽다. 몸을 바로 세우는 것이 감정 조절의 지름길인 이유는 감정이라는 정신적 작용이 결국 우리 몸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글· 브레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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