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깥이 22℃나 되는 날씨에도 춥다고 징징대는 너를 사랑해. 샌드위치 하나 주문하는 데도 한 시간씩이나 걸리는 너를 사랑해. 나를 얼간이처럼 바라볼 때 콧등에 작은 주름이 생기는 너를 사랑해. 하루 종일 너와 지내고 나서도 내 옷에 남은 네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너를 사랑해.” -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중에서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만들어낸 수많은 책들이 가장 오래도록, 가장 방대하게 써내려간 대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은 자신의 성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불멸의 사랑을 꿈꾼다. 심지어 “죽어도 좋아”라고 외치며 평생 찾아 헤매기도 한다.
단 한순간이라도 ‘사랑에 빠지기’를 열망하며, 해마에 그 기억을 담고 싶어 안달한다. 사랑이 뇌에 무엇을 제공하기에 예측된 슬픔과 고통을 감수하고도 이토록 얻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는 매순간 무엇인가 선택해야 한다. 그 판단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 삶에 가장 큰 보상을 주는 쪽이다. 사랑에 빠진 뇌는 이성적인 보상보다 본능적인 보상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사랑의 쾌락을 경험하면 그 신호를 반복 추구하는 일이 생명체의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fMRI 촬영으로 밝혀진 사랑의 장소는 뇌 속에서도 깊숙한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미상핵’으로 드러났다. 본능의 중추로 알려진 이곳은 6천 5백만 년 전에 진화된 원시적인 뇌 부위다.
우리의 뇌는 중심부(기저)에 가까이 갈수록 본능과 연관되어 있으며, 바깥 부위(피질)로 갈수록 이성적 판단과 연관되어 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사랑을 떠올릴 때 우리는 그것을 내 안에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격정적 사랑의 비밀, 도파민
사랑에 빠졌을 때 미상핵의 활동이 커지는 것은 도파민dopamine의 수용기들이 이곳에 아주 많기 때문이다. 도파민이 분수처럼 분비되면 뇌는 격렬한 에너지와 흥분을 생성한다. 활력이 넘치고 기쁨이 최고조에 달하며 웃음이 많아지고 행복에 도취된다.
이런 경험은 기억에 새겨져 일단 한 번 그 꿀맛을 보게 되면 그것을 지속적으로 맛보고자 한다. 사랑은 도파민, 즉 쾌락중추에 중독되는 것이다. 도파민은 가장 강력한 천연 각성제 중 하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는 마약 중독자의 뇌 활동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때문에 모든 종류의 약물 중독은 도파민 수치와 연관이 있다.
오르가슴 또한 도파민의 대량 분비에 의해 발생하는 결과다. 오르가슴을 느낄 때 인간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도파민이나 엔도르핀 계열의 호르몬들을 굉장히 많이 분비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자의 경우 그 시간은 길어야 7초에 불과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섹스를 할 경우 두 사람 사이의 격정적 시기는 그만큼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른 성관계가 사랑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황홀함을 주는 ‘사랑에 빠지는 단계’를 조금 더 일찍 졸업시켜주는 것뿐이다. 대신 서로에 대한 신뢰와 만족감을 주는 성관계는 뜨겁지는 않지만 조금 더 오래도록 유지되는 성숙한 사랑의 단계로 이끈다.
천상의 중독을 치유하는 법
코넬대학의 신시아 하잔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도파민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격정적인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30개월이다. 그 기간 안에 성숙한 관계를 쌓지 못한 연인들은 헤어지게 된다. 이때 도파민의 중독에서 멀어진 인간은 중독 이후의 후유증, 고통과 슬픔에 직면하게 된다.
마약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치료가 필요하듯이 사랑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도 치료가 필요하다. 우선 새로운 상대를 만나 다시 한 번 도파민의 향연에 빠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상대에게 길들여져 있던 뇌는 쉽게 새로운 상대를 찾지 못한다. 고수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다음은 상대를 생각나게 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최소화시킨다. 고통의 끈들과 멀리했다면 이제 웃음이 많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다. 친구가 웃으면 자연스럽게 나의 입꼬리도 올라가게 된다. 고마운 미러 뉴런 덕분이다.
자, 이제 잃어버린 도파민을 불러들이자. 뇌는 새로운 것들, 신기한 것들을 느끼면 도파민 지수가 올라간다. 두려워 말고 시도하자. 운동도 좋은 방법이다. 운동은 도파민 수치를 올릴 뿐 아니라 몸의 활력도 되살려준다. 장소를 고민한다면 햇볕을 쬘 수 있는 곳이 좋다. 햇볕은 뇌에 안정을 주는 세로토닌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가끔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거나 부족할 때가 있다.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는 도파민은 환각이나 편집증을 보이게 하거나, 언어나 운동을 조절할 수 없게 만들고(질 드라투렛증후군) 반복행동(강박신경장애)을 발생시키게 한다.
반대로 도파민이 많이 부족한 경우 몸이 떨려 신체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파킨슨병이나 우울증, 정신분열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가볍게는 주의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역할도 한다.
인류에게 사랑의 환상을 심어준 도파민은 신이 준 가장 달콤한 낙원의 사과이다. 그러나 그 사과의 달콤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 기억 또한 상처가 되기 쉽다. 환상을 현실로 환원시키는 주문은 상대를 사랑해주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다. 신뢰와 존중의 성숙한 관계로 상대의 존재에 감사하게 될 때 격정적 사랑의 도파민은 해마의 한 부분에서 행복을 주는 기억으로 남아 오래도록 미소 짓게 해줄 것이다.
글·최유리 yuri2u@brainmedia.co.kr